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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사람이 있었다.

by 담서제미 Mar 20. 2025


  근무하는 동안, 내가 가장 자주 부딪혔던 벽은 바로 '숫자'였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기관은 취업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떤 기관도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취업률은 분명 중요한 지표였다. 기관의 성과를 측정하고, 정책의 효과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사연은 결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은 오랜 시간 재취업을 하지 못해 실의에 빠져있던 중년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그는 오랜 기간 함께했다. 작은 강점부터 찾아갔다. 그것들을 하나씩 발전시켰다. 재취업이 되기까지 일 년이 넘은 과정을 거쳤다. 만약 취업률이라는 숫자만을 고려했다면 그 과정을 충분히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취업’이 아니었다. 그에 맞는 ‘올바른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직업상담은 단순히 이력서를 다듬고 면접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그가 가진 가능성을 발견해 나갔다. 때로는 잊고 있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취업률이라는 압박은 상담의 본질을 흔들기도 했다.


  “이 사람은 취업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를 때도 있었다.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직업상담의 목적은 ‘통계’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돕는 것임을 잊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취업자 수’, ‘취업 유지율’ 같은 숫자들이 가득했다. 그 숫자 뒤에는 각기 다른 얼굴과 이야기가 있었다. 청년 구직자, 경력 단절 여성, 퇴직자, 한부모 가정 등 나를 찾아온 이들의 상황은 모두 달랐다.


  나는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성과를 관리했다. 퇴직 후 내 마음에 남은 건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 그들의 작은 변화와 성장,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건넨 감사 인사였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이 한마디가 수많은 통계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상담은 결과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결과가 되는 일이었다.     


  정년퇴직 후, 나는 숫자들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취업률, 성과 지표, 통계 보고서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은 것은, 숫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도 내가 만났던 수많은 얼굴들이 잊히지 않는다. 힘겹게 취업의 문을 두드리던 청년, 경력 단절의 벽을 넘어 새로운 시작을 찾던 여성, 은퇴 후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중년 남성들. 그들의 표정, 목소리, 함께했던 작은 순간들이 숫자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퇴직 후, 나는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직업상담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지켜왔던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숫자가 아닌 사람.’ 나는 언제나 사람을 봤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상담의 진정한 가치는 숫자가 아닌 과정에 있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게 되는 그 순간들. 그것이야말로 내가 직업상담원으로 살아온 이유였다. 직업상담의 가치는 결과로만 평가될 수 없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남아 있는 작은 흔적이자, 내 기억 속에 따뜻한 순간으로 살아남아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대답한다.

  “나는 늘 사람을 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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