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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실라 Jul 29. 2024

화랑관 (1)



성운신문 문화부 기자 이정민은 문화부에서도 미술 전시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제 3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았지만 탁월한 안목과 수려한 글솜씨 덕에 그녀의 전시회 감상 혹은 비평 기사는 미술 전시 마니아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있었다. 특히 그녀는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한 신인들 발굴에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그덕에 한국 미술계에서 맺은 좋은 인연들이 꽤 있었다.

 

오늘 받은 초대도 그런 인연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득 과거를 회상하며 정민은 컴퓨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메일이 와있었다. 초대장이었다. 화랑전시관으로의 초대. 미술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공식 오프닝 전 프라이빗 파티가 열릴 거라고 했다. 아무리 문화부 기자라고 해도 보통 이 정도로 사적인 파티에 초대를 받지는 않는데, 정민은 특별히 초대를 받은 것이다. 


전시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마주환. 5년 전만 해도 무명에 불과한 화가였다. 그러나 언뜻 보면 잔잔하지만 그 안에 숨은 역동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정민이 그의 작은 전시회를 극찬하는 기사를 내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솔직히 정민도 자신의 기사가 그 정도 영향을 발휘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자신의 기사는 그저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주환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화가이기에 아마 자신이 아니더라도 분명 누군가가 그를 알아봐주었을 거라고 말이다. 어쨌든 정민의 호평 덕에 그의 전시회가 입소문이 나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됐다. 방문자들 뿐 아니라 미술계 관계자들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호평을 쏟아냈다. 덕분에 주환은 한순간에 스타덤에 올랐고, 소리소문없이 묻혔던 그의 이전 작품들도 다시 재조명받았다. 그는 순식간에 앞으로 한국 미술계를 책임질 젊은 화가 중 하나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떠올린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환은 예술가 답지 않은 면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겸손하고 착실한 성격이었다. 유명세를 얻은 주환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처음 그의 전시회에 대한 기사를 쓴 정민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감사를 표한 것이었다. 이걸 계기로 두 사람은 친밀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정도의 사이가 됐다. 특히 새로운 전시회를 열 때 주환은 늘 정민을 초대했다. 설사 정민이 관련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초대했다. 그것이 주환의 감사를 표하는 방법임을 잘 알았기에 정민도 다른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늘 주환의 초대에 응했다.  


이후 주환의 경력은 탄탄대로였다. 특히 그는 2년 전 세명 그룹의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뉴욕의 유명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가 저번달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새로운 전시회를 열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뉴욕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줬다는 뜻일까? 주환의 작품을 좋아하는 정민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라이빗 파티의 날짜는 5월 15일. 다음주 수요일이었다. 파티는 오후 6시부터 시작이지만 전시관은 오후 2시부터 참석자들에게 개방된다고 초대장에 적혀있었다. 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다음주 수요일은 하루 종일 밖에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부장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혹시라도 허락을 못 받을 걱정은 없었다. 마주환의 귀국 전시회. 그것도 공식 오프닝 전 취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면 아마 다른 스케쥴이 있었어도 빼줬을 것이다. 




화랑전시관, 흔히 화랑관 (畫廊館)이라 불리는 미술 전시회관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해 있었다. 전시관이 위치한 동네는 본래 수풀이 우거진 조용한 곳이었는데 지난 10년간 많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몰라보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있었다. 신축 아파트와 주택이 많이 세워졌고 서울을 오가는 대중교통편이 편리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자연스럽게 새로 들어선 카페나 식당이 많았다. 이 덕분인지 주말에는 서울에서 놀러오는 커플이나 젊은 부부들도 꽤 있었다. 조용히 데이트하기 좋은 동네라고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탄 것 같았다. 


화랑관은 동네의 높아진 인기의 수혜자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미술계 관계자나 미술 마니아들 사이에서나 알려진 숨겨진 명소였는데 지금은 동네 정도가 아니라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다. 지역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서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들었다. 화랑관을 좋아하는 정민에게는 기쁘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지는 소식이었다. 자신만 알던 맛집이 어쩌다가 모두의 맛집이 된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좋지만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도 함께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파티 참석자들에게 전시관은 오후 2시부터 개방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민은 아침 10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약 11시쯤 화랑관에 도착했다. 문제는 없었다. 마침 화랑관에는 주환 외에도 정민의 지인이 거주 중이었다. 정민은 그녀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화랑관에 주환의 작품을 보러가는 겸 오랜만에 그녀와도 근황을 나눌 생각이었다. 


화랑관은 동네의 가장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조금 경사진 언덕이 있었는데, 그 언덕만 오르면 화랑관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언덕 진입로 왼편에는 “畫廊館”이라고 새겨진 큰 명패석이 세워져 있어서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고 해도 화랑관을 찾기 어렵진 않았다. 정민은 명패석 앞에 도착하자마자 습관적으로 반대편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가로등마냥 놓여져 있는 CCTV가 있었다. 전시회관인만큼 화랑관은 철저한 보안을 자랑했다. 이 언덕 진입로 앞에 설치된 CCTV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야 정민아!!”


언덕을 다 오르기 무섭게 반가운 목소리가 정민을 반겼다. 정민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파마머리에 안경을 쓴 중년의 여성이 정민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살집이 좀 있는 편이라 덩치가 꽤 커보이는 편이었는데, 넉넉한 스타일의 흰색 블라우스에 밝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인지 그녀는 본래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쾌활한 성격인데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이미 50대가 넘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지현. 국내 뿐 아니라 해외, 특히 영국에서 이름을 날린 유명 화가였다. 


“오랜만이에요 이모.”


정민도 밝게 웃으며 여자에게 다가가 지현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였는데 이는 지현이 정민의 아버지의 옛제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정민의 아버지는 서울의 한 미술대학의 교수였는데 제자인 지현의 재능을 알아보고 영국으로의 유학을 적극 추천했었다. 유학비용이 없는 지현을 위해 직접 세명문화재단에 연락해 장학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지현에게 있어 정민의 아버지는 은사를 넘어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인연 덕에 지현은 정민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정민의 집에 자주 방문했다. 정민의 어머니도 지현을 마음에 들어했고 지현은 어린 정민을 조카처럼 예뻐했다. 지현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에는 이전처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았다. 정민이 문화부 기자가 되자 자신의 전시회 뿐 아니라 다른 유명 화가들의 전시회에도 일부러 정민을 초대해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현이 만들어준 기회들이 정민의 기자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지현이 영국에서 귀국해 화랑관에 머물며 작품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메시지도 여러번 주고 받았고 통화도 했지만, 서로 일이 바빠 오늘에야 겨우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반가워하는 지현을 보며 정민은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이 바빠도 더 일찍 얼굴을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점심 먼저 먹을까?”


“예, 좋아요.”


정민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녀는 아침을 잘 챙겨먹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쯤되면 항상 배가 고팠다. 


“어디서 먹을까? 내 숙소로 갈까? 부엌에서 뭐 좀 만들어줄까?”


“아니에요, 이모. 번거롭잖아요. 화랑관에서 먹어요.”


“화랑관도 좋지. 사실 나도 별 일 없으면 점심 저녁 다 화랑관에서 떼우는 편이야. 밥이 정말 맛있다니까.”


깔깔 웃으며 지현이 앞장 섰다. 정민도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바로 앞에 화랑관이 보였다. 화랑관은 정민이 생각하기에 국내에서 가장 예쁜 전시관 중 하나였다. 


화랑관은 총 5층으로 이루어진 현대적 양식의 건물로 ப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1층은 다른 층들보다 1.5배 정도 높이가 더 높았다. 외관은 밝은 베이지색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선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심플하고 미니멀리스트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전반적으로 화랑관은 화려하다기보다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색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규모에 비해 크게 보이지 않았고 귀엽다는 느낌도 있었다. 


화랑관의 정면을 바라보던 정민은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전에 화랑관에 왔을 때는 못보던 건물이 하나 보였다. 화랑관과 비슷한 스타일의 현대적 건축양식의 2층 건물이었다. 하지만 화랑관과 달리 외관은 어두운 톤의 백색이었고 대형 유리 창문이 눈에 띄었다. 화랑관과 비슷하면서도 더욱 모던한 디자인이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정민이 물었다. 


“저건 무슨 건물이에요, 이모.”


“아.”


지현도 정민을 따라 2층 건물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정민과는 달리 익숙하다는 듯 별다른 감흥을 보이진 않았다. 


“윤창섭 사장님 기념관.”


“기념관이요?”


“응. 얼마 전에 완공 됐어. 그래서 지금 화랑관 4층이 텅 비었어. 사장님 생전 작품들이랑 컬렉션을 전부 다 저기로 옮겨두었거든. 저기도 다음달 쯤에는 아마 공개가 될 거야.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지현은 마지막에 덧붙인 한마디는 끝내지 않고 말꼬리를 흐렸다. 쓸데 없는 사족을 붙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민은 모른척 했다. 지현은 예전 고 윤창섭 사장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었다. 고마우신 분. 하지만 예술가로서는 평범한 사람. 이것은 지현 뿐 아니라 한국 미술계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윤창섭 사장에 대한 인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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