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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실라 Aug 05. 2024

화랑관 (2)

윤창섭 사장. 세명 그룹 초대 회장 윤영민의 삼남.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레 기업의 여러 사업들을 접하면서 성장했지만 그에게는 상인이 아닌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윤창섭 사장은 학창 시절부터 미술에 푹 빠져 살았고 미국 유학 중에도 학교보다는 미술관과 전시관을 더 들락날락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했고 특히 한국 미술계의 확장과 발전을 위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미술을 향한 그의 불타는 열정은 결국 초대 회장인 윤영민마저 감복시켰는데 덕분에 윤창섭 사장은 관심이 없던 경영에는 완전히 손을 떼고 본인이 사랑하는 미술에 평생 집중할 수 있었다. 세명문화재단도 윤창섭 사장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재능 있는 국내 예술가들을 후원해 보다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화랑관 역시 윤창섭 사장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것이다. 윤창섭 사장은 본인 소유의 부지에 순수미술전시관뿐 아니라 화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대형 화실과 숙소를 짓기 원했다. 윤창섭 사장의 유지를 잇기 위해 세명 그룹이 세운 전시관이 바로 화랑전시관이었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세명 그룹은 윤창섭 사장의 이름으로 예술, 특히 순수미술 관련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현재 한국 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화가들 중 세명 그룹의 신세를 지지 않은 이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윤창섭 사장이 한국 미술계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윤창섭 사장은 단순 후원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타고난 예술가였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본인만의 영감을 캔버스에 표현하는데도 열심을 다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천부적인 감각이나 창의성이 부족하다보니 그가 아무리 오랜 시간 공들여 작품을 내놔도 범작 이상의 평가를 받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솔직한 평가를 내놓을 수 있는 미술 관계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기에는 다들 그에게, 그리고 세명 그룹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개성이 뚜렷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들 천지인 미술계에서 윤창섭 사장의 작품들을 평가하는 것은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윤창섭 사장이 고인이 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현 세명그룹 회장인 윤태준은 냉정하고 계산적이기로 유명한 인물로 수익이 되는 사업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극한의 실용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계속해서 세명문화재단을 후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윤창섭 사장 때문이었다. 소문으로는 집안 어른 중 윤태준 회장이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사람이 그의 작은 아버지인 윤창섭 사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한국 미술계에서 윤창섭 사장의 예술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려 한다면…… 윤태준 회장 입장에서는 더 이상 지금의 후원을 이어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미술계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은 인물인 건 맞지만 예술가로서는 저렇게 기념관까지 세워가며 기념을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 정민도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화랑관을 드나들면서 정민도 윤창섭 사장의 그림들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다고 할 만한 그림은 없었다. 굳이 하나 뽑으라면 그의 대표작인 “새벽의 정적” 정도일 것이다. 윤창섭 사장의 작품 중 유일하게 수작 평가를 받는 그림이었다.


정민과 지현은 사이좋게 화랑관으로 향했다. 화랑관은 정면에서 보면 직사각형 모양의 하나의 건물처럼 보였지만, 사실 서관, 중앙관, 그리고 동관 이렇게 셋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화랑관의 정문은 1층 중앙관에 있었는데 널찍한 회전문이었다. 이 회전문을 통과하면 화랑관의 외관만큼이나 깔끔하게 꾸민 로비가 나왔다. 로비의 끝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었고 오른편에는 방문객들이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라운지가 있었다. 전시관답게 로비 벽면 곳곳에는 그림들이 걸려있었는데, 주로 예전 화랑관에서 전시했던 화가들의 작품 중 선별된 일부를 구매해서 걸어놓은 것이었다.


지현과 정민은 사뭇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안내데스크 쪽으로 향했다. 데스크의 직원도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사실 오늘 있을 프라이빗 파티 때문에 전시관은 아직 개관 전이었지만, 지현의 얼굴을 알기 때문인지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늘 파티에 초대받은 이정민 기자에요.”


지현이 직원에게 정민을 소개했다.


“파티 전에 저랑 따로 약속을 잡아서 미리 왔는데, 괜찮죠? 지금 5층 식당으로 가려고 하는데.”


“예. 괜찮습니다. 초대장은 지금 미리 확인해드릴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민이 대답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화랑관에 있을 예정이니까요. 나중에 또 확인할 필요가 없다면 지금 해도 좋겠네요.”


확인은 순식간에 끝났다. 직원이 정민의 이름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사이 두 사람은 안내 데스크를 떠나 로비 안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1층에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방문하는 관람객의 편의를 고려해서인지 화랑관 엘리베이터 안은 한 번에 10명이 타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안에는 현재 화랑관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전시 및 이벤트 관련 공고가 붙어있었다. 정민은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공고들에 대충 눈길만 주고 5층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고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랑관의 중앙관 5층에는 식당과 카페가 있었다. 화랑관 관람객이나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는데, 가격은 일반 레스토랑이나 카페보다 훨씬 쌌다. 하지만 음식과 음료의 퀄리티는 어디와 비교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오늘 같이 프라이빗 파티가 예정돼 있는 날은 화랑관의 휴관일이기 때문에 식당의 메뉴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게 보통이었다. 휴관일에는 일반적으로 직원들만 화랑관에 있기 때문이다.


5층 식당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아직 식사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리를 잡고 밥을 먹고 있는 직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정민이 가까이서 밥을 먹고 있는 직원의 식판을 슬쩍 살펴보니 오늘 점심 메뉴는 비빔밥에 된장국. 반찬은 김치와 오이 무침, 그리고 어묵 볶음이었다. 비빔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정민은 속으로 오늘은 꽝이네 라고 생각했다. 반면 지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점심 메뉴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제 손님이에요. 그냥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화랑관의 작업실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화랑관의 식당과 카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본래 예술가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지만,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그 수가 많지만 않다면 같이 누릴 수 있었다. 정민 역시 기자 신분으로 화랑관을 들린 적이 많았기에 공짜로 화랑관의 식당과 카페를 이용하는 게 더 익숙하기는 했다.


두 사람은 식판을 집어들고 밥과 반찬, 국을 받은 다음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구석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둘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식당에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적당히 큰 키에 머리는 칠흑같이 검었고 짙은 남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크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날카로운 눈빛 탓인지 신경질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남자를 보자마자 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미소가 살짝 굳어있었다.


“잠깐 인사만 하고 올게.”


“예, 이모.”


아무래도 남자는 화랑관의 평범한 직원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현은 일부러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통해 화랑관 뒷편이 보였다. 가장 먼저 돌출된 것처럼 튀어나온 서관과 동관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서관과 동관을 잇는 긴 브릿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브릿지에 의해 조금 가려졌지만, 여러 조각상들을 세워 놓은 화랑관의 정원이 보였다. 그 너머로는 고동색 지붕을 가진 하얀 벽돌 건물 하나와 그 옆에 세워진 갈색 벽돌의 이층집이 보였다. 하얀 벽돌 건물은 화랑관에 머무는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실이었고 그 옆은 그 예술가들의 숙소였다. 이 두 건물 모두 화랑관 뒷편에 위치해 있었고 관계자들 외에는 접근이 금지돼 있었다.


볼 때마다 신기한 구조란 말이야. 새삼스레 화랑관의 동관과 서관을 이어주는 브릿지를 내려다보며 정민은 생각했다. 브릿지는 양면이 통창으로 돼있었고 위에는 화랑관과 같은 베이지색의 지붕으로 덮여있었는데 내부폭은 두 명 정도씩 좌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내부에서 브릿지를 통과할 때 바라보는 전경이 탁 트여 있었기 때문에 전시관 뿐 아니라 밑의 조각정원의 아름다움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름 화랑관의 명물로 자리잡은 덕에 전시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일부러 이 브릿지를 통과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정민도 예전에 화랑관에서 이 브릿지를 통과한 적이 있었다. 브릿지는 화랑관 3층에 위치해 있었고 동관과 서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얼핏 보면 재미나 미적 감각을 위해 지어진 것 같은 브릿지였지만, 사실 건물 구조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브릿지가 없다면 화랑관 관람객들과 직원들은 화랑관 내에서 이동을 하는데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계했을까. 정민은 예전 브릿지를 통과하면서 떠올렸던 의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화랑관은 서관, 중앙관, 그리고 동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1층과 2층의 경우는 서관이 중앙관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동관에서도 중앙관을 통과하면 단숨에 서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층부터는 아니었다. 3층 중앙관은 큰 강당이었는데, 주로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들을 때 사용하는 장소였다. 3층의 강당은 동관과는 연결이 돼있었지만, 서관과는 분리돼있었다. 때문에 동관 3층에서 서관 3층으로 이동하려면 이 브릿지를 통과하거나 아니면 밑층으로 내려가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화랑관의 서관 4층과 5층 역시 중앙관으로부터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즉, 만약 정민이 5층 식당에서 서관 5층 (이곳에는 미술 도서들만 모아놓은 미술 도서관이 있었다)으로 이동하고자 한다면 3층으로 내려가 동관으로 이동한 다음 브릿지를 건너 서관 3층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가는 게 가장 빨랐다. 밖을 나가지 않고 건물 내에서만 이동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재미있기는 한데 너무 번거로워.’


살짝 고개를 저으며 정민이 브릿지에서 눈을 뗐다. 어느새 지현이 돌아와있었다. 남색 정장의 남자는 다시 식당 밖을 나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정민이 물었다.


“누구에요?”


“안세민 기획 팀장.”


지현이 대답했다.


“처음 보는 거야? 정민이도 화랑관에 들렀다면 얼굴 정도는 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기억을 더듬으며 정민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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