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에게 그랬던 것처럼 강훈의 질문은 간단한 것부터 시작됐다. 이후에는 좀 더 디테일한 부분들을 물어봤다. 거의 정민에게 물어본 것과 비슷한 질문들이었다. 노아는 신중하게, 그리고 자세히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하지만 답변의 내용은 정민이 한 것과 별로 다른 게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정민의 답보다 훨씬 부실했다. 노아는 정민과 달리 미술계 관계자들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몇시에 화랑관을 떠났냐는 질문에 노아는 8시 58분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아냐고 강훈이 이어 물으니 휴대폰에서 네비게이션 어플을 키는 와중에 시간도 자연스럽게 확인했다고 했다. 8시 58분이면 8시 50분에서 9시 사이라고 했던 정민의 답변과도 일치했다. 알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강훈이 질문을 계속했다.
“서정훈 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신가요?”
“저희 작은아버지십니다.”
노아가 바로 대답했다. 여전히 침착했지만, 정훈이 언급되자 조금 의아하다는 눈치였다.
“두 분은 어제 파티에 같이 오셨었죠?”
“예. 제가 차로 작은 아버지를 학교에서 픽업해서 왔습니다. 신우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계시거든요.”
“그렇군요. 하지만 갈때는 같이 돌아가지 않으셨구요.”
“예.”
이번에도 막힘없이 노아가 답했다.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죠.”
“먼저 가라고 직접 기자님에게 말씀하신 건가요?”
“아뇨. 휴대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시간이 언제였나요?”
“잠시만요.”
노아가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7시 53분이었네요.”
“그전까지는 같이 화랑관을 떠나는 걸로 돼있었나요?”
“......그런 말을 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노아가 대답했다.
“하지만 같이 왔으니 당연히 같이 돌아가는 걸로 생각하고는 있었죠. 그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요.”
“알겠습니다. 서정훈 씨가 화랑관의 어디서 뭘 하고 계셨는지, 누구를 만나고 계셨는지 혹시 아시나요?”
“아니요.”
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마 화랑관 관장님과 계속 같이 있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두 분이 같이 다니시는 걸 봤거든요. 같이 다니시면서 파티 참석자 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시는 것 같았습니다. 미대 교수시니까 파티에 참석하신 다른 분들을 많이 아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군요.”
잠시 강훈의 질문이 끊겼다. 노아는 강훈을 보채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강훈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강훈의 기습적인 다음 질문에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강도훈 씨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뇨.”
노아가 즉답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누구신가요 그분이? 어제 파티의 참석자신가요?”
“예, 맞습니다.”
강훈도 즉답했다.
“화가입니다. 정민 기자님 말로는 유명한 화가라고 하더군요. 그분이 바로 어젯밤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이런……!”
노아는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란 말에 조금 격분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는 도훈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끔찍하군요.”
참담한 투로 노아가 말했다.
“마주환 작가님의 전시회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다른 화가를 죽이다니…… 그런 줄도 모르고 전 어제 한가롭게 파티나 즐기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강훈이 위로하듯 말했다.
“노아 기자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설마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거라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을 테니까요.”
정민은 강훈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강훈은 노아가 모르는 게 당연했을 거라는 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아가 어젯밤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임에도 말이다. 어째서일까?
정민이 느낀 것을 노아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노아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순진하게 말을 계속했다.
“꼭 범인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형사님.”
살해당한 것은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지만, 노아는 마치 피해자의 유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지하고 열성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나마 사건이 화랑관에서 벌어졌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어제 보니 전시관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더군요. 분명 범인의 모습이 찍혀있을 겁니다.”
“.......”
정민이 가졌던 의문을 자연스레 입에 담는 노아였다. 신기한 것은 강훈의 반응이었다. 강훈은 아무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는데, 정민은 거기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강훈은 수사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침묵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강훈의 침묵에는 왠지 모를 곤란함이 느껴졌다.
그 곤란함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강훈이 부랴부랴 질문을 계속했다. 강훈은 노아에게도 지현과 재훈에 대해 질문했다. 두 사람에 대해서 노아는 정민과 거의 같은 내용의 답변을 돌려주었다. 다른 점이라면 노아와 재훈은 어젯밤 화랑관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는 정도였다.
“재훈 사장님이 절 알아보고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설명을 이어가면서도 노아는 조금 쑥쓰럽다는 투였다.
“제가 예전에 나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팬이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자리에 앉아 식사도 하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이재훈 씨에 대한 기자님의 인상은 어떠셨습니까?”
“무척 쾌활하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아가 꾸밈 없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저보다 한참 형님이신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편하게 대해주시더군요. 어제 저녁 때의 분위기도 재훈 사장님이 주도하셨죠.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재훈 씨가 술을 많이 드셨나요?”
“많이 드시진 않았습니다. 와인 두 잔 정도?”
노아가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기는 했지만 취하신 것 같진 않았습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어요. 술을 마실 수록 텐션이 오르는 타입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이재훈 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거죠?”
“예, 업무상 전화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강훈의 질문에 노아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사실 업무상 전화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거의 사과하는 어조였다.
“느낌상 그랬을 뿐이니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녁 시간 내내 재훈 사장님은 굉장히 들떠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사람이 180도 달라지시더군요. 굉장히 심각하게 전화를 받으시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지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뵐 수가 없었구요. 아무래도 사업가시니까 업무상 문제라도 일어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재훈 씨가 일어났던 시간은 몇 시 정도였습니까?”
노아의 설명이 충분했던 것인지 강훈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노아는 이 질문에도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해야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생각 끝에 노아가 대답했다.
“8시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재훈에 대한 질문은 그것으로 끝났다. 강훈은 노아에게 이후 재훈의 행적에 관해 아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전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살인사건을 기사화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자님?”
“......?”
노아는 강훈의 질문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정민도 그랬다. 강훈이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정민 기자님은 문화부 기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부 기자가 아니시니 이번 사건을 굳이 기사화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노아 기자님은 범죄 사건, 특히 살인사건을 주로 다루시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다름 아닌 노아 기자님이 계셨던 현장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특종감 아닐까요?”
“특종감이죠.”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노아가 대답했다.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다만 제가 추구하는 특종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속보나 단독취재보다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더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빨리 기사를 내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사건에 대해 조사한 후 사건의 전모를 상세히 기술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신문사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있을 타입의 기자는 아니신 것 같군요.”
강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었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제가 프리랜서입니다.”
노아는 아무렇지 않게 강훈의 농담을 받아넘겼다.
“다행히 이런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게도 먹고 살 수 있지요. 덕분에 앞으로도 계속 제가 원하는 기사를 쓸 수 있게 됐구요.”
“그러다 방송출연까지 하셨구요.”
“그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노아가 대답했다. 정민은 강훈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노아를 일부러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노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노아의 유들유들한 미소는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전부 흘려보내버리는 것 같았다.
강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노아를 쳐다보았다. 옆에서 보는 정민이 민망할 정도로 노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마치 노아의 속내를 전부 읽어내려는 것 같았다. 노아조차 결국 먼저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우고 말았을 정도였다.
“만약 기자님이 그 사건들에 대한 뒷이야기들까지 기사화했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강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기자님이 기사화하신 많은 사건들의 진상을 밝혀낸 사람이 사실 기자님이다…… 라고 밝히셨다면 더 많은 인기를 누리지 않았을까요? 단순 범죄전문 기자가 아니라 명탐정이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노아는 몹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저는 기자지 탐정이 아닙니다. 명탐정은 더더욱 아니죠. 전 미스테리를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너무 겸손하시군요, 기자님.”
강훈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제 친구들 중 여럿이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몇몇은 기자님과 함께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죠.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기자님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더군요. 경찰 수사에 매우 협조적일 뿐 아니라 지원을 아끼시지 않는다고 말이죠.”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 친구들이 이런 말도 하더군요. 사건이 꼬이고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기자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구요. 기자님이라면 기밀이 새어갈 염려도 없을 뿐 아니라 사건 해결 후의 공을 전부 경찰에게 돌린다고 말입니다. 지난 몇 년간 대외적으로는 경찰이 해결한 것으로 알려진 여러 굵직한 사건들…… 사실 기자님이 해결하시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요. 그리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노아가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빙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딱히 강훈의 질문을 부정하는 답은 아니었다. 강훈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민은 침을 삼켰다. 그녀는 강훈이 노아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훈은 생각보다 노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정민과 달리 노아의 추리력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까부터 은근히 노아를 떠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