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by 하늘아래


최근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읽고, 문득 그의 첫 작품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생각나 글을 써보기로 한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특별히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좋아해 가끔씩 다시 찾아 읽곤 했다.


이 작품은 물리학과 교수와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의 평생토록 지속된 우정 혹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늘 영원함을 갈구하는 것이 나의 모순인지라 이런 이야기들에 늘 마음이 빼앗긴다.



기억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강렬함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렬함은 넘치는 것이 아니라 충분치 않음에서 오랫동안 지속된다.


채우지 못한 그 부분들에 대한 집착이 오랜 열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생 동안 누군가를 강렬한 감정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지독한 행운이자 감정의 사치 같은 일이리라.


그리고 이 불운한 행운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강렬함을 따라가 볼 용기를 가진 자가,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동경하는 자가 쥔 복권 같은 것.


고백하자면, 나는 사춘기 시절 엄마의 책장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꺼내 읽은 후로 줄곧 이 복권을 손에 꼭 쥐고 살았다.


내가 기꺼이 그 사치를 견뎌낼 수 있을지 앞서 두려워하며.



나는 언제나 삶을 나의 통제하에 두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나의 통제력을 벗어난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어쩔 수 없이 빠져들고 만 것들, 내가 전혀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의 어느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문체는 서늘하면서도 간결하고, 동시에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행간에서 인물의 복잡한 마음이나 심리를 나에게 투사해 볼 수 있는 느린 호흡도 좋다.

오래 머물게 되는 문장들에는 늘 명암이 함께 있다.

완전히 나쁜 것도 완전히 좋은 것도 없다.

그냥 그곳에는 삶의 진실이 있다.

삶에서 일어나지 못할 일이란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자주 그것들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책을 읽는 동안 늘 어느 한쪽에 속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괴로워했던 나날들에 대해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




낮에 램프를 켜놓고 보면 빛이 유리창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고 말한다. 실험에 따르면 100개의 빛 입자 중 평균 네 개는 반사되어 돌아오고 96개는 유리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빛 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양자전기역학 :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 QED :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 by. 리처드 파인만



어린 날의 나는 그래야만 하는 것들과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필연적으로 삶은 항상 투쟁의 장이 되었다.


그렇게 삼십 대를 지나오며 거의 너덜너덜한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저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삶에 일어나지 못할 일은 결코 없다는 걸.


그리고 이 글을 쓰고부터 다시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저 글에서 끝내 해소하지 못한 채 남아있던 나의 오랜 숙제, '무력감'에 대한 결말 말이다.


삶에서 닥치는 주로 불운한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 비록 결론을 예측하고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꺼이'라는 옷을 입었을 때만이 효과가 있다는 것.


애초에 정답은 없다.


그저 나의 의지를 더하여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담담한 노력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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