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풀무질 책방에서

by 후추

작년 봄,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풀무질 책방에 다녀왔습니다. 민주항쟁을 하던 80년대부터 대학로에서 인문과학 전문서점으로 운영된 풀무질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서울 풀무질의 사장님이 제주에 내려와 제주 풀무질을 운영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였습니다. 언젠가 가봐야지 생각만 했던 차에 기회가 생겨 풀무질로 향했습니다.


제주 시내에 있는 집에서 1시간 정도 일주동로를 타고 달리다 보니 아담하고 예쁜 책방에 도착했습니다. 조그만 동네길을 따라 들어간 책방 매대에는 베스트셀러나 인기 작가의 책이 진열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관광지로 소비되는 제주가 아닌,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보는 작가들의 정서가 느껴지는 책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입도 3년차 주민으로서 언젠가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라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목차만 봐도 좋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스르륵 책을 훑으며 작가들의 영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추측했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역사, 문화의 책들이 작은 책방에 한데 모여 자기를 봐달라고 조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서점에 놓인 책들은 책방지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창이기도 합니다. 그의 사상과 신념에 따라 선정된 책들을 보면 책방지기의 마음을 몰래 훔쳐보는 아찔한 감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곳 풀무질에서 광복이와 해방이라는 이름의 개를 만났습니다. 저도 땅콩이와 함께 사는 보호자로서 이 친구들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광복이와 해방이가 입양된 계기는 제주의 보호견 문제와 상관있습니다. 특히 해방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이지였을 때, 책방 근처에서 발견되어 입양되었답니다. 어제도 집으로 가던 길에 대로변을 횡단하던 개 2마리를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지역문제 중 하나로 보호견 문제를 말하는 건 온당한 지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책 이름은 기억하진 못하지만, 책방 한편에서 그림책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자신을 버린 보호자의 꽁무니를 좇는 개를 그린 장면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보호자를 따라 뛰어가지만 자동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망연자실해하는 개의 모습이 제주의 어두운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주에 관광객이 두고 떠난 보호견이 많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기 때문입니다.


한때 사랑을 받던 반려견이 보호견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다 사고가 나고, 들개가 되어 가축을 공격하는 일이 뉴스에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 있어 보입니다. 오늘처럼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보호동물들이 더욱 걱정됩니다. 모두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신경 쓴다면 동물들의 삶이 조금은 더 괜찮아질 거란 기대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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