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Nov 29. 2024

조그맣게 사는 굴뚝새처럼

결혼식의 하객이 손님?

 가로수의 은행나무 일렬로 금가루를 빚어서 황금 나비로 팔랑인다.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기 싫어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내려와 길바닥에 눕는다. 겨울을 코에 바짝 대고 시림을 한도 느끼니 주섬주섬 겨울들을 챙기리라.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입장하는데 톡방은 4개월 전부터 내 아이 결혼식이 몇월 몇일이라고 꼭 참석하라는 알림이 뜨고 우리 나이에 알려온 애경사비는 만만치 않다.


 축하해주고 위로해 주는 애경사가 아닌 손님의 자격으로 당연시되는 부조금 때문에 말이 많아져서 악·폐습이 되고 네이버 지식인 창에도 질문이 많이 뜬다. 이번 주에도 가깝지 않은 굳이 찾아가지 않아야 할 지방에서조차 결혼식 문자를 받았다. 또 이어져 있는 달력의 동그라미 표시들. 하객 또는 손님 어떻든 간에 말이 이는 결혼식에 대해 내가 닥치니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자녀 결혼식비를 받아내야 하므로 퇴직의 날짜를 고려해서 잡는 부모도 있고 억지로 부좃돈 봉투 미리 내밀며 이혼하는 인구가 많다며 삼가해야 하는 말을 인사로 악담처럼 주고 가는 이도 직접 있었다.


 이런 사례도 난 두 눈 뜨고 봤다. 시누이도 아닌 시고모 되는 이가 조카 혼례식에 와서 신부에게 눈을 흘기고 싫다라는 입을 삐쭉거리면서 크게 말하는 걸 신부가 듣고 신랑한테 투덜거리니 큰 싸움이 됐다. 이 시고모란 사람은 자식을 낳지 못해서 홧병이 있는지 그 연세에도 시샘이 강한 건지 조카며느리 몇을 이런 식으로 내보냈다고 당고모가 이 며느리한테 참으라며 이르더란다.

 

 이런 실제로 또 한 예는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이 말만 대차게 하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큰아이 혼삿날이 코로나 유행 다음 해였다. 그러나 세계적 유례없는 이 전염병은 언제 그칠지 모르고 중대한 혼례를 치러줘야 하는데 군말 없이 조용히 큰일을 치르려고 했다. 동생들이 부좃돈 내밀면 도로 보내주는 성향인 내게 이 동생이 두 번이나 전화질해서는 “코로나 때 날을 왜 잡아. 응, 더 있다가 해야지.” 심술 먹다 결코 조카 결혼을 외면했다.

그래도 잘만 살더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예식을 치렀다.


 조카들 결혼 때는 엄마의 외가 식구들 다 불러놓고 내가 대신 인사 다닌다. 문자가 내게로 와서, 그리고 이 동생은 외출이라 못 간다고 해서이다.

사실 엄니가 살아계시면 엄니집 일에 다 오실 분이지만 지금 엄니가 안 계시니 인사 자리는 더욱 멀어졌다. 나는 아무에게도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이라야 작은아버지 저승 가시고 외삼촌 영흥도 산뿌려지셨으며 이모 한 분밖에 더 있냐고. 사촌들은 다 미국 나가서 살고 이젠 정말 부를 친척이 없다. 아버지가 세상과 이별셔도 그 길엔 친가족만 남아 예를 드릴 것이다.


 나뿐만이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 요즘 태세에 많이들 고민한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본인 결혼이 끝나면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단다.

 

 친척이 없다고 창피한 일도 없으며 하객이 많지 않아서 간지러움도 가질 필요 없다. 나는 그렇게 간편하게 했으며 요란스럽게 행하지 않았다. 다만 혼주석 상차림 해논 곳에 내 막냇동생이 식접시를 들고 찾아왔고 사돈댁엔 국민학교 동창 모임의 남자친구가 들어왔었다.

난 여기서 황당하므로 얼굴이 빨개지고 식겁했다. 이런 일은 정말 없어야 한다.

  

 또 하나 큰일을 치르기 위해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억지로들 하고 있으며 여기서 부질없이 연애도 하더라.

이런 것 또한 방폐해야 한다.

결혼식이 줄이어 있다 보니 불편한 진실을 쓰게 됐다.


 * 게이트볼도 이젠 젊은이가 차지하고 노인분들은 보이질 않네. 세대는 은행잎처럼 확 변하고 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