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 융프라우
스위스 둘째 날이 밝았다. 인터라켄(Interlaken)에서 새벽 5시 55분에 일정을 시작하는 계획이었다. 여행 일행들이 모두 집결해 있었지만 우리 가족만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참았어야 했는데 늦었는데 서두르지 않는다고 아들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지금도 가장 미안하게 생각되는 아픈 기억이다.
이때부터 아들과 이탈리아 일정 중반까지 대화가 단절되었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하면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아들 군대 간다고 갔던 여행인데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화를 내고 사이가 틀어져 버렸으니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관광 일정은 따라야 했기에 일행에 합류했다. 인터라켄(Interlaken)을 출발해서 융프라우(Jungfrau) 4,158m에 오르는 여정이다. 기차역은 3,454m에 위치해 있고, 융프라우는 Top of Europe이라고도 불린다. 산악 열차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라고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두 번 열차를 갈아탔다.
드디어 열차에 올랐다. 열차를 타고 3454m까지 올라간다니 사실 믿기지가 않았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융프라우 산악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사진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 접한 스위스의 대자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열차 이동 중간중간에 작은 마을들이 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다니... 소떼도 만나고 열차는 계속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했다.
중간 역에서 승무원으로 보이는 두 분이서 반갑게 인사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의 만남을 뒤로하고 또다시 열차는 정상을 향해 달렸다.
열차를 갈아탔다. 역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경치는 역시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림 같은 멋진 풍경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음 열차로 갈아타고 다시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융프라우를 만나러 갔다. 산악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지나 융프라우 전경을 볼 수 있는 곳까지 잠시 걸었다.
마주 대한 거의 정상 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만년설이 펼쳐져 있었고, 산 정상에 구름이 걸려 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았다. 해발 4천 미터 급의 산 정상 뷰는 역시나 대단했다. 유리 관람 부스 안에서 촬영한 장면이긴 하지만 대자연의 풍경에 압도되었다.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잠시 후에 외부로 나가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이동 예정이었다. 융프라우 실제 자연을 영접한다는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드디어 야외 전망대로 올라왔다. 기대를 한껏 안고 마주한 외부의 모습은... 곰탕! 그것도 찐 곰탕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 유리 벽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씨에 청명한 경관을 봤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는 위치의 야외 전망대에 도착하니 그냥 구름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변해 버린 날씨에 절호의 찬스를 날려 버린 느낌이었다.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케이스였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곰탕 속에서 스위스 국기만 흐릿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까마귀(?) 한 마리가 떡하니 난간에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보며 '아이고 복도 없는 사람들 불쌍하다'라고 얘기하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까마귀 인증 샷만 찍고 실내로 다시 내려왔다. 융프라우 관람은 아쉬움을 남긴 채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실내 전시장에는 선명하게 '융프라우-유럽의 지붕'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인증샷을 남겨 본다. 해발 3571m 지점이었다.
산 정상 부근의 실내에는 관람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융프라우 산악 열차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바닥과 천장이 완전히 얼음으로 둘러싸인 터널을 지났다. 'Top of Europe'이라는 얼음 문구가 여기가 융프라우라고 알리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초콜릿으로 에너지 충전을 하고 다시 여행을 이어가 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 열차가 출발했다. 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구름에 가려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정상을 볼 그날을 기약하며 융프라우와 작별했다. 구름에 가려진 융프라우 정상이었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일부이리라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다시 초록의 풀밭이 펼쳐진 산 중턱까지 내려왔다. 굽이굽이 꼬부라진 길을 열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스위스의 대 자연은 그야말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목초지에 이쁘게 지어진 집들이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잠시 정차한 기찻길 옆 건물에 소의 목에 다는 카우벨이 걸려 있었다. 어제 낮에 베른에서 기념으로 구매했던 카우벨이었다. 갑자기 워낭 소리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산 중턱에 자리한 집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스위스에 와서 이런 집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은 좋겠지만 매일 보는 이런 풍경도 지겨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의 상상을 끝으로 융프라우 관광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산악 열차 뒤로 펼쳐진 융프라우를 뒤로 하고 스위스와 작별했다.
이번 유럽 여행의 하일하이트를 장식하게 될 이탈리아로 이동했다. 또 어떤 얘기들이 펼쳐질지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2018년 감성 충전, 유럽 이야기 by 드림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