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누리는 아트와 그에 담긴 의미
2025년 봄 제주여행에서 꼭 들르겠다고 생각했었던 ‘제주도립미술관’을 다녀왔다.
이곳은 공항에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일정기간마다 다른 내용의 기획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이다. 전시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모던한 미술관 외관, 산책하기 좋은 한적한 뒤뜰,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옥상 조형미술품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었다.
주말에 방문했었지만 생각보다 미술관 분위기는 한산했다. 널찍한 주차장에서 내려 미술관 방향으로 걷다 보면 미술관 전면의 널찍한 통장과 그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앞서 언급했었던 안도 타다오의 ‘유민미술관’, ‘본태박물관’과 유동룡 이타미 준의 ’ 방주교회‘외에도 제주에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다. 제주를 방문하는 '아트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더 이상 천혜의 자연만이 제주를 방문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서 이내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가 궁금해졌다.
이곳은 건축가 한기영씨에 의해 설계되었다. 2009년 8월 조선일보에 그녀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 미술관이 최대한 몸을 낮춰 제주와 미술 작품의 배경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는 그녀의 말이 있다.
전시되는 작품과 주변 자연보다 미술관이 더 돋보이지 않고 조화롭게 보이도록 설계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차분한 미술관 외관의 색과 전면과 측면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자연의 일부인 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고 무엇보다 미술관자체가 주변환경에 비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한기영 건축가의 의도가 잘 반영된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했었던 봄에는 조선시대부터 근,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아픔을 표현해 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에게 알려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이 그려진 회화들도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난 후였기 때문에 작품들이 더 마음에 와닿았었다.
작가 서용선은 “우리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에 비극이 있다. 망각은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온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불행을 가져오는 망각은 역사의 아픔을 잊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픈 역사나 민족의 불행에 대해 무관심 내지는 타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내 일이 아니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들의 작품에는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고 알려야 한다는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하는 이유…
불합리한 일에 앞장섰던 분들께 드리는 존경과 예우이자 영문도 모르고 희생되었던 분들과 유가족께 마음으로 전하는 위로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인 동시에 후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결이 똑같지는 않지만 ‘마술관 옆 인문학’ 저자인 박홍순 작가는 그의 책에 이렇게 썼다.
‘예술작품은 종종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힘으로 작용하곤 한다’
‘작가 자신의 내면에만 갇혀서, 혹은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는 테크닉에 갇혀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닐까?’
전시되었던 작품들은 역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세련되고 화려한 테크닉 대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대중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옥상전시관을 둘러봤다.
살랑거리는 바람, 따뜻한 햇살, 눈앞의 전경,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르겠는 외국인 가족의 호기심 어리고 차분한 발걸음을 따라 걸었던 순간들이 ’이 순간이 참 좋네…‘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했다.
다음번 제주방문 때는 다시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때는 또 다른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고 차분하고 평화로운 사진 속 공간을 다시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