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쓰는 사람 13화

서중진담(書中眞談)

#할머니의팡도르 #안나마리아고치 글 #비올레타로피스 그림 #오후의소묘

by 수키
나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넘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이가 사춘기에 관해 묻던 날, 호르몬의 작용으로 누구나 다 겪는 성장 과정이라는 설명과 그 시기가 되면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고 말하자 아이는 나에게도 그런 고민을 했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 시절―내 기억이 닿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내가 고민이 없는 삶을 살았던 이유는 평탄한 삶 덕분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빴고, 서로가 무탈하게 알아서 잘 지내는 것이 최고의 안부 인사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가족들 눈에 나는 가장 걱정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잘 살아가는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을 돌이켜봤을 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왔는가에 대한 의문과 외면했던 삶에 대한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누구 하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나는 말하기를 포기했고, 내 안의 생각과 질문들은 허공을 떠돌다 흩어지고 제대로 된 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적당히 주변 환경에 맞추어 사는 삶이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잊고 지냈던 질문들은 중년의 나이에 문득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지금 그대로 괜찮은 거야?’ 누군가에게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머뭇거리는 대답에 대해 나는 삶의 방향조차 알기 어렵다. 이런 자신 없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다시 외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용기 내어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에 마주해 본다.


바쁘게 살다가 무심코 떠오르는 질문들은 다행스럽게도 천천히 나아갈 수 있게 과속방지턱 역할을 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밟으며 인생이 마치 하나로 뚫린 고속도로라도 되는 것처럼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지만 일을 그만두자, 제동이 걸렸다. 살아갈 날은 길고, 그 삶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어서 내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노력은 혼자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속 페달을 밟는 것보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릴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나는 뜬금없이 가속 페달 밟기 일쑤였다.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안전 교육을 듣던 날, 적정 속도가 몇 km인지 아느냐는 강사님의 질문에 여러 대답이 쏟아져 나왔고, 이어서 강사님은 “위험 상황에 닥쳤을 때 바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서 차를 세울 수 있는 속도가 적정 속도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10년이 넘은 지금도 이 말은 내가 무언가에 쫓기듯 조바심이 들 때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경고음이 되어 준다. 그렇게 나만의 안전 속도를 맞추며 살고 있다. 내가 놓쳐 버린 그 시간은 다시 나에게 오지 않지만 앞으로 나에게 올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이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사춘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날 아이에게 “엄마는 그때 고민을 하지 않아서, 지금 고민하면서 살고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살면서 선택의 상황에 놓일 때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고,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을 때 미련이 남지 않았다.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이에게는 그러한 깨달음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해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삶에 대해 알려주려니 나의 가르침들은 언제나 서툴다. 그런 고민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로 엉켜 있는 생각의 타래를 천천히 한 올 한 올 풀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풀다 보면 내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남겨질 내 끈의 마지막은 다른 끈과 연결되기를 희망하며 그대로 남겨두려 한다.

keyword
이전 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