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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쓰는 사람 10화

원망(遠望)

#킨츠기 #이사 와타나베 #책빛

by 수키
자유로운 희망을 위해


모든 것은 스러져 빛을 잃는다. 나를 이끌어주던 별빛이 서서히 사라질 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어둠에 잠식된다. 마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별처럼 다시는 그 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슬퍼진다. 무기력의 늪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일상을 지내는 것이다. 그 일상들조차 전부 신기루처럼 느껴지지만, 기계처럼 하루를 움직이다 보면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이 하나로 다시 모이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를 살아냈구나.


그림책을 읽어도, 독서 모임에 나가도 전혀 흥이 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읽은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다가 나도 모르게 “요즘 알 수 없는 좌절감으로 괴로워요.”라고 속마음을 뱉어 버렸다. 안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치우치다 보면 점점 무기력해지고 그곳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명확한 형체가 없는 막연한 두려움은 나를 데리고 점점 바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은 바닥이 아니라 애초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온몸에 힘을 주고 발버둥 치면 몸은 더욱 가라앉는다. 물에서 떠오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힘을 빼는 것이다. 긴장을 풀면 몸은 서서히 떠오른다. 하지만 그전까지 많은 좌절과 연습은 필수다. 애초의 시작점일지도 모르는 바닥에서 내가 나올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은 어찌 되었든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행동이 아닌 태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일상을 보내겠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일상을 끌고 가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어떻게 하면 다시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생의 나락에서 나를 구원해 줄 한 줄기 희망이 필요하다.


이사 와타나베의 그림책 《킨츠기》는 글이 없는 그림책이다. 텍스트가 있어야 할 공간은 까만색으로 채워져 있다. 원래 있던 색이 점차 사라지고 토끼는 들판으로, 바다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하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 돌아온 토끼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 물건들을 보고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러고는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형체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한 줄기 나뭇잎을 새로 붙여서 만든 커피잔에 넣고 물을 준다. 그 한 줄기 나뭇잎은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는 다시 토끼의 물건들이 걸려있다. 처음과는 다른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하나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색이 없던 의자는 나무와 같은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다. 토끼가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물건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행복을 느끼려면 일상에 행복의 압정을 많이 깔아 두어야 한다고 말한 서은국 교수의 말처럼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그 물건들은 어쩌면 토끼의 행복 압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끼는 것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 집착이 생긴다. 그 집착이 나를 고집불통으로 만들기도 한다. 자신을 틀 안에 가두면 그 틀에 맞게 예쁘게 자랄 수는 있지만 틀이 깨지는 순간 발가벗겨졌다는 수치심과 불안으로 휩싸인다.


니체는 자신을 태워버릴 각오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느냐고 말한다. 토끼가 흩어져 있는 파편들을 새롭게 이어 붙였을 때 그 물건들과 함께 토끼도 새롭게 태어났을까? 그림책을 읽고, 킨츠기에 대해 궁금해져서 도서관에 있던 나카무라 구니오의 《킨츠기 수첩》이라는 책을 대출했다. 저자는 킨츠기를 할 때 명심해야 할 세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첫째, 깨진 그릇을 무언가 빗대어 비유하면서 바라보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 둘째, 마음속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을 상상하고 즐기면서 작업할 것. 셋째 수선한 그릇을 조심스럽게 아끼면서 사용할 것. 저자는 그릇을 수리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이 떠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책의 첫 장면에서는 물건들이 여러 개의 나뭇가지에 나뉘어 걸려 있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하나의 줄기에서 뻗친 나뭇가지에 새롭게 만들어진 물건들이 걸려있다.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미순의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에서 “이것도 한 인생인 거야.”라는 문장은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의 변명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삶을 누구나 꿈꾸지만 그 삶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들어 있을까? 화려한 모습만 갖춘다면 내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캐릭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던 시절 한 선생님은 “포기하는 것도 용기야.”라고 학생들에게 말해 주었다. 이 말은 내 마음에 박혀 무언가를 포기할 때가 되면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킨츠기》를 읽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결실을 맛본 사람만이 다시 희망에 기댈 수 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작은 희망도 포기하지 않고 전투적으로 일상을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실패도 두렵지 않았던 시절, 나를 이끌던 힘은 내 삶 그대로를 사랑하던 마음이었고 그 마음으로 자유롭게 희망할 수 있었다. 새롭게 희망을 품는 것이 두렵지만 내 삶에 흩어진 조각들을 잘 붙여서 나만의 희망을 만들어 보자고 다짐해 본다. 희망은 저 멀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 눈은 밖으로만 향하고 있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원망. 한 글자의 한자가 바뀌면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하는 마음이 먼 앞날을 희망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지금 주어진 나의 희망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난날을 붙잡고 현재를 원망(怨望)하기보다는 나의 삶을 좀 더 원망(遠望)하며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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