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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이혜묵 Apr 26. 2024

왜 조직을 싫어했는가? 3탄

진급경쟁에 두려움과 배신감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결정이었던 것 같다.

회사의 진급 제도를 뚫고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왜 그렇게 안된다고 스스로 단정 짓고 살았는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시도라도 해보고 나올 것 하는 후회다.

누가 알아서 시켜주겠지, 아니면 말고 

결국 패배자가 된 이후에야 깨닫게 된 생각, 한번 부탁이라도 강하게 해 볼 것!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면 왜 지래 겁을 먹었는지 풀어보자.

이 조직에 진급판은 한마디로 아 수리판, 아니 이 회사만 그렇지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많은 회사와 조직들이 그러하다고 본다.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권모술수, 

진급을 결정하는 키맨들이 자기들의 퇴직 후에 제대로 대접해 줄 놈 찾기

365일 중에 364일을 친하게 지내도 진급을 결정하는 하루는 결국 동문 후배를 챙기는 문화

그리고는 인사규정에는 없지만 지역쿼터제(지역별 인원수 배분)

지역별, 대학 출신별, 부서별 등 여러 요소를 넣어 바둑판같은 판을 짜서 움직인다.

대상 후보에 올라가면 1년이고 2년이고 많게는 3년까지 심사위원 후보들을 찾아다니며 식사하고 야외활동으로  든든한 끈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회사직원의 상갓집이나 결혼식장에는 진급대상자들이 윗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일명 얼굴도장 찍기라고 부른다. 이런 풍경도 내게는 정말 싫다.

현장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기편이면 큰 건도 봐주고 경쟁자 이면 티끌도 처벌하는 식이다.

"일의 능력은 누구나 거기서 거기지 뭐, 다 똑같아. 그 이상은 정치야!" 이런 식이다.

이런 판에서는 놀기는 죽도록 싫었다.

시험경쟁은 하겠는데 이런 경쟁은 싫었다.

하기야 떨어진 자, 패배자의 변이라고 보면 된다.

올라갔으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도 같은 인간이기에 고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장 6년 차를 보내고 7년 차가 되던 해에 진급에 자신이 없어 본사에서 집 근처 지역으로 옮기겠다고 윗분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부탁을 했었다. 

이유는 '대내외 협상력, 외국어 능력, 내부 직원관리 능력, 추진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진척 부족 등으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능력 있는 사람이 이자에 필요하다"는 핑계를 메모해서 여러 번 시도했다.

술이 원수이지. 

술 먹고 숙소로 오는 길에 카페에서 같은 부서 한 단계 윗분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1년만 더 같이 좀 있어보자고.  

그래 집 근처에서 월급 받으나 본사에서 받으나 같은 걸

같이 일하자고 할 때 있자. 마음속으로는 어느 곳이나 진급활동을 안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들 부서의 진급대상자가 되었으니 진급활동에 대한 조언들이 많이 들린다.

일년가 목표를 세워서 활동해라. 술만 먹고 다닌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누구와 약속 잡아 놨으니 나와라. 밀어줄 확실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어라.

이런 이야기들이 미숙한 내 머리에 들어 올이 없다.

일단 움직이면 돈이다. 사실 돈이 아까워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재테크였는 데. 그때 왜 몰랐을 까? 

그건 바로 나의 외골수 때문이다. 

남과 소통하지 않는 자 말로가 처참하리라. 


진급심사가 며칠 남아 있지 않은 어느 토요일이다.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심사위원이 될 선배의 문자가 있어 전화를 걸었다.

출신지역과 학교가 다르고 내 부서를 총괄하고 있지는 않아 그동안 별다른 소통은 하지 않았다.    


" 너 진급할 때 되었냐? 나는 금시초문이다. 너네 부서장이 와서 이야기할 때야 알았다. 네가 진급 포기한다는 소문은 가끔 들었지만 진급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내가 너네 부서장 한데 몇 번 이야기했으면 한 번이라도 찾아와서 이야기를 해야지 그 소리 안 들었냐?

나중에 떨어지고 나서 뒷소리로 서운하다는 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사이가 이상해지고 서먹해지며, 본인이 제대로 안 하고 나중에 뒷소리 할 려고.

네가 먼저 이야기해야지 내가 어떻게 일일이 다 알아서 연락을 하냐?

왜 그동안 진급할 마음이 없다가 이제야 진급한다고 그러냐?

그 이유가 뭐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데.

내 이야기는 다 했으니 너 이야기 한번 해봐라.

그리고 지금 못하면 생각했다가 다음에 해봐라"


얼마나 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답답했는지 나의 부서장이 몇 번 부탁을 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 부서장은 내게 만났다는 이야기는 해주었는데 별다른 말은 없었다.


나는 아침 일찍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고는 머리가 멍해진다.

도대체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왜 아침부터 이런 말을 할까?

별 추측이 다 든다.

 "누구랑 어디 가다가 하는 걸까?, 나중에 뒷소리 못하게 미리 쐐기를 박아 놓으려고 하는 걸까"


이날 저녁 9시가 다되어 다시 그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너무 뭐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할 텐데  더 복잡하게 해 놓은 것 같다."

한번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더니 다음 주는 바빠서 만나기 어렵다고 대답을 한다.


결국 이 해에 진급은 떨어졌다.

다음 심사에 일 순위로 해 주자는 심사위원들의 구두약속이 있었다는 말로 위로를 받으면서 꿈에 그리던 집 근처로 근무지를 옮겼다.  어떻게 보면 심사위원들의 면피성 멘트일 수 도 있었다.

그래도 이전까지 구두약속은 대부분 지켜지고 있었다.


또 다른 한해를 집 근처 산하기관에서 시작했다.

첫 해 보다는 쪼금 더 진급에 신경을 써 본다. 아주 가끔 문자도 보내보고 조금만 선물도 준비해 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별로 발전된 게 없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다.

주위에 별 이야기 들이 다 들린다. 진급에 안 뛰는니, 마음이 없느니, 뭐 하고 있냐는 것이다.


누군가는 스폰서라도 구해라. 

운동이라도 적극적으로 나가라. 본사도 자주 가라.(이것은 약속 만들고 밥 사러 가라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진다.

스폰서는 정말 싫었다. 

나중에 진급되면 몇 배를 갚아 줘야 하는데 그런 짓은 못하겠다. 

외부를 통한 청탁도 싫다. 그만큼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공짜 없고, 정답 없고, 비밀이 없다는 3불인 "공. 정, 비" 원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고 있는 것은 작년에 약속은 지키겠지 하는 아니한 생각뿐이다.

작년에 심사위원들 4분의 3이 바퀴었다. 

바뀐 심사위원 중 한 명을 심사 며칠 전 또 만났다. 

인사이동이 잦은 30여 년 동안 같은 본사 부서에서 2번을 같이 근무를 해서 나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도 해 부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안 좋은 소리만 듣고 왔다. 

작년 심사에서 후보약속은 문서로 되어 있는 게 없어서 안 지켜도 된다고 인사부서에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뭔가가 떨치기 위한 복선을 까는 기분이 들었다. 판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감지된다.

같은 지역에 경쟁자가 5명이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4명 모두 자기들 대학선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년도에 약속을 뒤집어야 자기 후배들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화통이 터진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 심사위원은 해 줄 것처럼 심사 당일 진급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문자로 보내달라고 카톡이 왔다.

왜 이런 문자를 보낼까? 

자기는 끝까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일까.

이미 판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과는 같은 지역에 4명은 다되고 나만 빠졌다. 

다른 지역에서 몇 사람이 된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왠지 조직과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 든다.


이 이후로 몇 년간 심사위원 중 한 사람에 전화가 내 휴대폰에 울렸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찾아와 고향 어디시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난 그 동네 사람 아니다. 고향이야기 꺼내지 마라. 호적도 파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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