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라는 이름의 무게
"큰딸이니까."
이 한마디가 내 삶을 규정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너무나 익숙한 말이라, 때로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큰딸’이니까 참아야 했고, ‘큰딸’이니까 모범을 보여야 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을 삼켜야 했고, 힘들어도 버텨야 했다.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었고, 여전히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결정을 해야만 했다.
부모님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동생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수록,
나는 변함없이 중심에 서서 무언가를 정하고 선택하는 역할을 맡았다.
늘 내 몫이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지?’
그렇게, 한 번도 내려놓을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오늘은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 속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랬다.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늘 혼자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기대하는 모습을 맞추기 위해 애썼던 시간.
동생들에게 든든한 언니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날들.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머릿속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려야 했던 순간.
결국,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묻고 싶다.
‘큰딸’이기 전에, 나는 누구였을까?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딸로서 살아오면서,
정작 ‘나 자신’으로서의 삶은 얼마나 살았을까?
나는 언제쯤,
‘큰딸이니까’가 아니라
‘나 자신이니까’라는 이유로 선택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큰딸들과 마음을 함께 하고 싶다
오늘도 묵묵히 감당하고 있을 당신의 무게를 안다.
누구보다 단단한 척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왔는지도 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에게도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큰딸로서의 삶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그 강함에 내 자신을 가두지는 말자.
이제는 그 무게를 내려놓고,
‘큰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마주할 용기를 내보자.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