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쓴 맛
일정이 있어 첫째 아이와 함께 학동역에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버려서 4~50분이란 어중간한 시간이 생겨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 마땅히 쉴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 장소 옆옆건물의 처음 보는 커피숍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커피, 아이는 에이드나 아이스티 같은 음료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들어가서 보니 완전 커피만 파는 전문 체인점이었다. 나는 아인슈패너를 주문하고 아이 몫으론 쿠키를 주문할까 하다가 요즘은 1인 1잔이 아니면 왠지 눈치가 보였다. 가격으로는 비슷비슷할 것도 같은데 단가가 다르려나?
아이는 자기가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커피라며 카페라떼를 주문하겠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시험기간이 되면 아이는 잠을 깨기 위해 가끔 커피를 마셨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키오스크에서 커피라떼를 주문하며 샷추가가 아닌 연하게를 누르려는 아이에게 안 그래도 카페라떼는 연하게 나온다고 보통으로 먹으라고 권했다. 아이는 나의 권유대로 보통의 뜨거운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커피는 그냥 일반적인 커피맛을 가지고 있었다. 난 커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SCA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커피 맛 평가, 원두 볶기, 라떼아트, 드립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래서 커피에 대한 평균 정도의 지식은 있다.
아인슈패너를 마시고 있는데 아이는 카페라떼를 마시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 안 마셔? 커피가 많이 뜨거워?"
"그게 아니고.. 너무 써."
"쓰다고? 이게?"
얼른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솔직히 커피 맛보다 우유맛이 더 강했다.
"정말, 이게 쓰다고??"
"그러니까 내가 연하게 먹겠다고 했잖아."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의 입맛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20살, 처음 커피를 마셨을 때의 나에게도 커피는 무척이나 썼다. 그래서 그 당시의 비엔나커피, 카페모카 등이 아니면 마시지 못했다. 이렇게 맛없는 쓴 커피를 왜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는데 이젠 커피가 없으면 하루가 허전하다. 그토록 썼던 커피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오히려 가끔은 샷을 추가할 정도이다.
비록 커피 한잔이었지만 그동안 아이의 덩치가 나만큼이나 커져서 때론 아이가 다 컸다고 무심코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아직은 커피 한 잔도 못 마시는 나이인걸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그런 너에게도 커피의 쓴 맛이 달게 느껴지는 나이가 다가올 테지. 오늘따라 아이가 정말 아기같이 느껴졌다. 덩치만 다 큰 아직은 정신적으론 내가 보듬어주어야 하는 내 아기.
그래 이렇게 사춘기가 지나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