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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이사 가고 싶다.

by 지니운랑 Dec 06. 2024

어릴 때 내 취미는 수집이었다.

우표와 엽서, 만화책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쪽지도 한 상자 가득 버리지 못하고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가 어릴 때 그렸던 그림, 유치원 때의 활동지, 학년 말 학교에서 가지고 온 파일 등도 어느 하나 버리지 못했다. 옷장에는 20년 전 대학 때 입었던 옷과 남편과 연예 시절 커플 티도 있었고 서랍장에는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올 물건들이 가득이었다.

때론 추억 때문에, 때로는 버리기 아까워서, 때로는 필요할 그 언젠가를 위해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다행이라면 물건을 도미노처럼 잘 정리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이삿날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창고 속에 있었냐고 놀라실 정도였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 지금 집에 이사를 와서 첫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이 집에 살고 있으니 지금 우리 집은 유치원 때부터 쌓인 물건들로 포화 직전이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집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정리를 해도 어수선하고 물건을 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시작했으며 만사가 귀찮았다.

깔끔하게 정리정돈 된 집이 가지고 싶었고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이 떠올랐으며 몸의 귀찮음은 바닥에 로봇청소기를 두길 원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정리수납 수업을 듣게 되었다.

계속해서 정리의 열망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의 용기가 없었던 나에게 정리수납 수업의 과제는 버릴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하루에 한 개 버리기 운동. 버리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버림을 실행하게 되었다. 아깝지만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면 버리기, 어차피 버려질 것 같은 물건이면 사지 않기, 예전에는 공짜라면 무료로 나눠주는 물건을 한 개라도 더 받아오려고 했는데 이젠 필요에 따라 부러 욕심을 내지 않는다.

솔직히 버리고 뒤늦게 급하게 필요하게 된 물건들도 있었지만 그 상황이 지나니 그 역시도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아직도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가득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버려나가고 있다.


주변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짐 정리하러 갔다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모셔둔 물건들을 보니 무척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들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쓰고 남겨질 물건들은 내가 정리하고 가고 싶기도 하고 죽을 때 들고 갈 것도 아닌데 모셔둘 필요성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젠 깨끗하고 가벼운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은 이사를 가고 싶다. 같은 집에서 너무 오래 산 것 같다.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 때까진 여기 살아야 할 테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이번에야 말로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완전 내 취향대로 집을 꾸며서 살아보고 싶다.

그때가 되면 어질러 놓을 아이들도 없을 테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자기 방은 스스로 알아서 정리하고 꾸며서 살라고 할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진 하루에 종이 하나라도 버리는 시간을 이어나가야겠다.

한 번 버리기를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이지 버리기 시작하면 버릴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젠 청소하는 시간도 아깝고 몸도 무겁고 귀찮아서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벌써부터 이러면 이걸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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