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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는 것

건강하게 늙고 편안하게 죽는 행운

by 지니운랑 Nov 29. 2024

내 동생은 유방암 환자다.

2020년 2월의 어느 날

아이를 낳고 6개월쯤 갑자기 가슴에 멍울이 잡혀 병원에 갔더니 당장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처음엔 모유수유를 하다가 그만 둔지 얼마 되지 않아 멍울이 잡힌 줄 알았다.

모유수유를 위해 가슴 마사지를 도와주러 오시던 분들도 자신이 마사지하다 유방 이상 찾아준 사람이 여러 명 있다고 자랑을 하셨는데 그분들도 찾아내지 못하셨다.

삼중음성 양쪽 유방 절제술을 하고 그 해 8월 조카는 첫 돌을 맞이하였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하며 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빠졌음에도 정기검진을 하러 서울에 올 때면 홍대에 암환자들을 위한 가발을 만드는 곳이 있다며 이왕지사 하는 거 예쁘고 자연스럽고 평소 하지 못하는 스타일의 가발을 골라야겠다며 웃으며 말하던 아이였다.

나와는 다른 곳에서 살아서 그동안의 고생을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동생은 임신을 하고 잦은 하혈을 한 터라 시행했던 병원 검사에서 항인지질항체증후군 양성이 나왔다. 사연 없는 아이가 있겠느냐만은 동생은 유산을 할까 봐 매일 주사를 맞으며 버텨야 했고 조카는 초음파로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음에도 출산할 때 태반이 녹아내려 있어 조금만 늦었어도 산모와 태아 둘 다 위험했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를 가지기 전까진 그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이 있던 동생이었다. 출산 이후 갑자기 생긴 암은 가족 중 아무도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매일 맞은 호르몬 주사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동생 말 따라 친구들 중에 가장 건강했는데 환자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아이는 다행히도 쑥쑥 잘 자라고 있지만 또래보다 사회성 발달이 느려 주변인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 시절 밖에 잘 나가지 못했고 혼자 자랐으며 엄마의 잦은 입원으로 조부모가 오냐오냐 키운 탓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지만 태아 때 매일 맞은 주사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운동 신경이 좋고 한글과 수가 빨라 책도 혼자 읽고 글자도 쓸 수 있으니 한쪽이 먼저 발달하고 다른 쪽이 나중에 발달하려는 것이리라.


암의 완치 판정은 5년이다.

5년을 우린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임신을 하면서 동생은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잦은 하혈로 친정에 머물게 된 날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결국은 친정 근처로 이사를 와서 제부가 친정과 집을 오가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 생활은 연이은 암 발병으로 인해 몇 년이나 계속되었고 불과 몇 달 전에서야 다시 일을 시작하여 여전히 친정 근처이긴 하지만 분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보다 외할머니와 자는 것이 익숙했던 조카는 이제는 엄마를 가장 좋아한다. 아빠보다 외할아버지와 놀러 나가는 것이 당연했던 조카는 이제는 아빠 껌딱지가 되었다.

동생이 아픈 이후로 매달 대구 갓바위 약사암에 가서 동생의 안녕을 비는 엄마는 여전히 만 5년 완치 판정을 빌고 또 빌고 있다. 근래 들어서야 겨우 아픈 동생과 어린 조카 사이에서 명절 때마다 가면 부쩍부쩍 늙어있던 엄마 얼굴에도 어느덧 편안함이 감돌았다.


그런데 만 5년을 6개월을 앞두고 한 검사에서 간수치가 이상하단다. 아직 정확한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약을 먹으며 3개월 뒤에 재검을 하잖다. 가슴에 암은 아니지만 병변이 있으니 추후 검사를 꾸준히 하라는 말도 엄마에게 하지 못했다.

이상하단 검사 결과를 받고 무섭고 심란해서 온갖 정보를 검색하고 처음 유방암을 발견했던 인근 병원에 상담도 다녀왔다는 동생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나와 닮은 사람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나와 함께 크고 함께 자랐던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아찔한 상상에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암은 전이가 되면 앞으로 남아있는 기간이 5년이라던데.."

동생은 무슨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내뱉을 수 있었을까?


근래 들어 주변에 암 환자들이 늘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갑상선암이란다. 매일 보다시피 하는 동네 지인들이 유방암이란다. 친구 엄마가 난소암, 친구 아빠는 뇌암으로 요양병원, 누구는 뼈전이, 누구는 폐암...


암수술을 하고 퇴원하자마자 해외여행을 떠났던 지인에게 괜찮냐고 체력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더니

"오늘이 내가 제일 건강한 날일 수도 있어서."라는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친구 아버지 문상을 갔다 왔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갔다고? 그다음은 나일 수도 있겠구나." 무심코 말하던 아빠의 모습도 머리에 맴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살아가는 이 무게감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부디 동생에게 아무 이상이 없어 나와 함께 건강하게 늙어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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