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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 클럽의 메카에서 꿋꿋이 책을 읽다

독일 베를린-서점 Shakespeare and Sons/채식식당 1990

by 김숲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해외 8- [독일 베를린 - 영어책서점 Shakespeare and Sons와 베트남 채식식당 1990 Vegan Living]


베를린 프리드리히샤인 지역의 바르샤바(Warschauer Str.) 역에서 내려 왼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분단시절 동서베를린 국경에 맞닿아 있는 바람에 통행이 제한되었던 오버바움 다리(Oberbaum Brücke), 그리고 전 세계 1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베를린 장벽 잔해에 벽화를 그려 1.3km의 오픈 갤러리가 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side Gallery)가 나온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 '형제의 키스'
분단시절 통행이 제한되었던 오버바움 다리, 지금은 위로는 에스반열차가, 아래로는 사람들이 다닌다.


동서 분단의 상징이 모여 있는 이곳, 과거 동독지역에 속했던 프리드리히샤인 지역은 놀랍게도 베를린의 대표적인 클럽가가 되었다. 통일이 된 후 동베를린 지역의 버려진 창고나 공장 등을 큰 규모의 클럽으로 개조한 곳들이 많아 거리의 낮과 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하는데, 클럽 그 비슷한 것의 문턱을 밟을 체력도 의지도 없는 우리들은 밝은 대낮에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과거의 동독, 지금의 베를린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에 이어 또! 셰잌스피어를 만났다. (해외 5. '빈에서 만난 셰잌스피어' 편 참조)



베를린 ‘Shakespeare & Sons’의 책방지기 중 하나인 Roman은 셰잌스피어의 이름을 딴 서점 중 원조격인 파리의 Shakespeare & Company 서점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가난한 작가들에게 책과 방을 내어준 파리의 그곳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자신의 고향인 체코 프라하에 유사한 이름으로 서점을 만들었고, 이어서 공동 창업자인 Beth와 함께 2011년 베를린에 2호점을 냈다. 자세히 보면 파리와 상호가 조금 다른데, 파리는 Shakespeare & Company(셰잌스피어와 회사), 이곳과 프라하 지점은 각각 독일어와 체코어로 Shakespeare & Son, Shakespeare & Synove(셰잌스피어와 아들)다. 파리서점 이름을 그대로 베낀 전 세계 곳곳의 다른 서점들보다는 그나마 양심적이다.


분단 시기 동독지역으로 주로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던 이곳 프리드리히 샤인 지역은 통일 후에도 계속해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서점이 있는 건물에는 원래 공산주의 서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책방지기들은 2014년 거의 폐허와 같은 상태의 건물을 인수하여 지금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2024년이 마침 이 거리로 이사한 지 10주년이 된 해인만큼 책방 곳곳에 10주년 기념 파티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파리, 오스트리아의 셰잌스피어 서점과 같이 영어책이 주를 이루고 있고, 파리 서점에 대한 오마쥬 차원에서 불어 책도 판매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샤인 지역은 베를린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아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책방지기들은 이 서점이 이주민들이 모이는 곳이면서 동시에 독일 사람들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책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는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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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특별한 점은 책방 안에 베이글 전문점(The Fine Bagels Cafe)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책방지기인 Beth는 베를린에 할랄(무슬림들이 먹을 수 있는 재료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가리킴) 베이글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 자신이 먹기 위해 책방 안에 베이글 카페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 베이글 카페는 서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명물이 되었다.


테이블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베이글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을 곁들여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군침이 돈다. 3주 간의 베를린 일정 중 우리는 이곳을 두 번 방문했는데, 한 번은 베이글이 완판 되어 맛보지 못하고 두 번째 방문에도 몇 개 남지 않은 베이글을 간신히 맛볼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이 있지만 거의 다 팔리고 기본만 남았다


서점은 폭이 좁고 안으로 쭉 길게 이어진 구조다. 결코 크지 않은 이곳의 서가는 영어로 된 소설, 에세이류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약간의 과학, 정치, 역사 그리고 약간의 평등 관련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무려 마가렛 애트우드의 신간이 반값으로 판매되고 있는 중고책 코너도 있으니 보물을 찾기 위해 탐험해 볼 만하다.


이 서점을 목적지로 정한 뒤 근처의 채식식당을 검색해 보았을 때, 채식‘옵션’이 있는 식당이 아니라 ‘모든 메뉴가 다 채식’인 채식전문식당이 내 구글 맵을 가득 채웠다. 분명 그냥 태국식당, 일식당, 중식당, 베트남식당, 타코전문점, 케밥집이면서 우리가 그런 식당들에서 상상하고 기대하는 모든 메뉴가 비건이었다. 우와, Shakespear & Sons 서점에서 도보 10분 내로 갈 수 있는 이런 비건 식당이 열개가 넘었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골라본다.


거리 전체가 이런 식당들로 가득하다


서점 뒤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비건 식당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식당들이 줄지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많은 채식전문식당 중에서 구글리뷰와 채식식당전문 애플리케이션인 해피카우의 순위를 모두 고려하여 정한 목적지는 베트남 음식점 1990 비건 리빙(1990 Vegan Living)이다. 25개가량의 비건 선택지 중에서 내가 원하는 구성대로 작은 접시, 큰 접시 음식을 골라 푸짐한 한 상을 받았다. 비건쌀국수, 비건만두, 비건꼬치 등 욕심을 잔뜩 부려 받은 음식은 보기에도, 맛도 환상적이었다.


비건쌀국수, 비건만두, 비건꼬치, 비건강정과 야채로 가득채운 한 상


단지 이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시지랑 맥주 밖에 없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으로 찾은 베를린은 천만의 말씀, 채식인이 어느 맛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미식의 천국이었다. 채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와 함께 여행을 하며 수많은 채식식당을 함께 방문한 파트너 역시 팔라펠과 세이탄(대체육)이 필수로 들어가는 채식 버거나 샐러드가 아닌 수많은 선택지에 놀란 눈치였다. 2024년 유럽 전역에서 ‘채식 친화도시’ 제2위에 오른 도시 베를린의 전반적인 채식 문화와 관련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이야기하도록 하자.


빵빵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 바르샤바 역 쪽으로 내려와 이번엔 오버바움 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을 옆에 두고 걸으며 분단시절 이곳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구경하는 이 다리가 경찰과 군인에 의해 통행이 제한되고 장벽에 가로막혀 서로를 볼 수 없는 모습. 분단국가의 한국인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그 상상으로 잠시 주춤했다가, 지금은 이 지역이 자유의 상징인 클럽들로 유명해졌다는 사실에 웃음을 지어본다.


오버바움 다리 아래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도 이렇게 아름답다
오버바움 다리에서 보이는 슈프레강 전경


클럽의 메카에서도 꿋꿋이 책과 채식을 찾은 우리. 비록 클럽은 구경도 못했지만 서점을 찾는 손님들의 개성 폭발 옷차림과 상상도 못 한 다양한 선택지의 채식식당들로 이 지역의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뭐 어때, 꼭 클럽을 가야만 쿨한 건 아니잖아?


글 김숲, 사진 Hajin


서점

* 이름 Shakespeare & Sons

* 위치 Warschauer Str.74, 10243 베를린 독일

* 책방 주요 큐레이션 영어책 전문 서점, 역사, 문학, 정치 등 / 베이글 샌드위치 조합에 따라 10유로 내외

식당

* 이름 1990 Vegan Living

* 위치 Krossener Str. 19, 10245 베를린 독일

*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모든 베트남식 메뉴 비건 - 20개 작은 요리 개당 5.5유로, 5개 큰 요리 개당 11.9유로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서점 기준 오버바움 다리 도보 19분, 이스트사이드갤러리 도보 18분


* 이 글을 작성하면서 아래 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 Lampoon Magazine, 'Shakespeare and Sons, Berlin. A bookstore burrowed in a post-war building'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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