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 Gallery Antiquariat Weinek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해외 7-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 고서점 Gallery Antiquariat Weinek과 채식식당 The Green Garden]
발음도 어려운 이 ‘잘츠부르크’라는 도시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한 권의 책 덕분이다. 코로나 시기 결혼을 한 탓에 해외로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찾은 부산의 한 책방에서 온갖 여행책들을 섭렵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박종호 대표의 풍월당 여행 시리즈였다.
의사의 삶을 살다 클래식 음악과 사랑에 빠져 클래식 음반점 대표가 된 그는 25년간 유럽을 100번 이상 방문하며 총 다섯 권의 도시 안내 시리즈를 출판하였는데, 그 시리즈 중 제1권이 바로 ‘잘츠부르크’ 편이었다. 패키지여행이라면 반나절만에 모차르트의 생가와 미라벨 궁전 정도를 찍고 가는 이 작은 도시에 얼마나 소개할 거리가 많기에 유럽의 쟁쟁한 도시들을 제치고 첫 번째 도시로 선정했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오스트리아를 넘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베를린 필하모니의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 100년째 이어지는 유럽 최고의 고전음악 페스티벌의 고장이라는 설명에 더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 있다는 점에 마음을 뺏긴 우리는 고민 없이 잘츠부르크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6월은 가장 유명한 축제기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딜 가든 구도심의 거리에서 음악 공연이 한창이었고 골목마다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은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5일 동안 머무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호엔 잘츠부르크성, 미라벨궁전, 모차르트 생가를 모두 방문한 뒤 본격적으로 서점 탐방에 나섰다. 무려 1594년에 문을 열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휠리글(Höllrigl)’ 은 사실 배경이해 없이 갔다면 그 역사를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관광객을 위한 억지스러운 콘셉트 없이 매 시기 주민들에게 필요한 책들을 제공하는 것이 이 서점이 무난하게 400여 년간 운영될 수 있었던 비결인 걸까?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돌리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두었던 곳인 Weinek 서점이 떠올랐다. 휠리글만큼 오래된 서점은 아니지만 ‘오래된 서적’을 파는 곳이라는 설명에, 주로 독일어 서적들로 가득 찬 어두운 인테리어의 서점을 생각하며 골목골목 찾아갈 때는 몰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영감, 그리고 유럽에서 기대하기 힘든 편안한 환대를 받게 될 줄은.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Antiquariat Weinek(안티콰리아 바이넥)”으로, 고서적 전문점이면서 동시에 현대미술 갤러리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전시 혹은 판매하고 있는 책이 물리적으로 오래되었을 뿐, 현대적 감각으로 꾸며진 공간 전체와 그곳에 전시된 미술작품들 그리고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바(Bar) 겸 카페는 ‘힙’ 그 자체였다.
잘츠부르크 대표 연극 Jederman(예더만)의 1920년 초판 프로그램북같이 낡은 책들이 가득한 책장 옆에 2024년에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형형색색의 그림이 걸려있는 곳. 도저히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두 시대성이 춤을 추며 어우러지는 축제 같은 곳이다. 검색을 해보니 영국인인 책방지기가 약혼자의 부모님이 1987년에 개업한 고서적을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책방지기에게 살짝 말을 붙이자 한국인 방문객은 처음인 것 같다며 서점의 구조와 갤러리 작품, 카페 메뉴를 편안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래된 책, 고전 작품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점을 좀 더 접근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는 그의 노력이 곳곳에 묻어나는 이 멋진 공간에서 우리는 책과 그림에 둘러싸여 홈메이드 시나몬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충분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찾았던 휠리글 서점 서가의 요리 코너에서 반가운 이름의 책을 발견했다. 잘츠부르크에 채식 전문 식당은 아주 소수이기 때문에 식당이름을 거의 모두 외우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식당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설마? 하며 책을 꺼내 들었다. 식당이름 빼고는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어 번역기를 돌려 보니 잘츠부르크에서 가려고 꼽아둔 바로 그 채식 식당 “The Green Garden”의 주인장들이 집필한 요리책이었다.
잘츠부르크의 대표적인 기념품인 모차르트 초콜릿을 사기에는 곤란한 날씨였기에, 독일어로 된 이 책을 기념품(?)으로 사기로 결심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해보고 싶은 음식을 골라 번역기를 사용하면 되겠지 뭐!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스테파니는 청소년 시절 섭식장애를 앓은 적이 있다고 한다. 먹는 것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먹으면서 섭식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채식이라는 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기왕이면 아름다운 한 접시를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2016년 요리사 줄리아와 함께 채식 전문 식당 The Green Garden을 개업했다. ‘아름다운 한 접시’에 걸맞은 예쁜 플레이팅이 SNS로 입소문을 타 안정적으로 영업이 가능해졌고, 식당의 주요 음료와 음식 메뉴의 레시피를 담은 책까지 출판하게 된 것이었다.
호엔 잘츠부르크 성 바로 아래 자리 잡은 The Green Garden은 생각보다 소박했고 맛은 평범했다. 위에서 소개한 서점을 들렀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기 때문에, 아쉽게도 이번에 가지 못한 또 다른 채식식당 GustaV(주소 Wolf-Dietrich-Straße 33)나 The Keep Garden Kitchen(주소 Schwarzstraße 50)이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있겠다. 그래도 가게 앞 작은 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The Green Garden의 테라스 석에 앉아 조용하게 식사를 한 뒤 잘츠부르크를 가로지르는 잘자흐강가를 산책하다 보니 풍월당 박종호 대표가 고전음악 페스티벌 참석을 위해 거의 매년 이곳 잘츠부르크를 찾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었다.
이번 유럽 여행 행선지 중 로마, 피렌체, 잘츠부르크처럼 과거의 유물이나 과거의 인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래서 음식, 문화 등 산업 전반이 관광객들을 위해 운영될 수밖에 없는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신기함과 이 모습을 간직해 온 도시에 대한 경외심에 더해, 최대한 ‘전형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인 도시가 풍기는 정체감(停滯感) 같은 것 말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도시에서 온 여행자였던 우리는 그런 ‘불변성’을 찾아 이런 도시들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에 도착한 지 하루 이틀이 지나면 어김없이 뭔가 박물관에서 돌아다니는 듯한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뭔가 그 안에서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는 장소를 만날 때 오히려 그 도시에 좀 더 빠져들었는데, 로마에서는 채식식당 Ops!, 피렌체에서는 서점 겸 채식식당 Brac, 잘츠부르크에서는 Antiquariat Weinek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오래된 도시에서 고서적 같은 오래된 것을 팔면서 가장 최근의 예술작품과 힙한 분위기의 카페 겸 바를 결합시킨 주인장의 감각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게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법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글 김숲, 사진 Hajin
서점
* 이름 Antiquariat Weinek
* 위치 Steingasse 14, 5020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 책방 주요 큐레이션 고서적 전문 서점, 소설, 연극 잡지 등, 커피와 와인, 베이커리 (~10유로)
식당
* 이름 The Green Garden
* 위치 Nonnateler Hauptstraße 16, 5020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대표 메뉴 비건 브런치 (인당 29유로), 단품 메뉴 비건 버거 15.5유로, 후무스 샐러드 14.5유로)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서점 기준 모차르트 생가 도보 5분, 식당 기준 호엔 잘츠부르크성 도보 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