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 성평등서점 She said와 수단음식전문점 Imbiss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해외 6- [독일 베를린 성평등서점 She said와 수단음식전문점 Imbiss]
오늘 소개할 베를린의 독립서점 She said와 수단 음식점 Sahara Imbiss 조합은 유럽의 독립서점 - 채식식당 중 가장 소개하고 싶었던 시리즈다.
She said와 Sahara Imbiss를 소개하기 전에 우선 이들이 있는 동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 베를린, 그중에서도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구의 Kottbusser Tor역 근처 구역은 베를리너들과 여행객들 사이에서 Kotti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지역이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이 지역이 오랜 시간 사실상 버려진 장소였다는 것이다. 과거 베를린 중심가에 집을 구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나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임시 주택이 이곳 크로이츠베르크에 대량으로 지어졌는데, 1980년대 낙후한 임대주택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베를린시의 재개발 사업에 맞선 그 유명한 “건물점거운동(Hausbesetzung)”이 등장했다.
건물점거운동 과정에 함께한 한부모 그룹, 노동자, 활동가들이 가난한 이들의 문화생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한 '무지개공장'은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영화 상영, 전시, 음악회 등을 하는 문화의 중심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도시 재개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 후 예술가들과 학생, 이주민 등 다양한 구성의 주민들이 모이며 각종 사회문화 운동의 중심지로 거듭났다고 하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 곳이란 말인가!
과거의 웅장한 역사적 건물이 남아 있지도, 신식의 화려한 건물이 들어서지도 못했기 때문에 사실 좀 초라해 보이기도 한 이 지역이 지금 그라피티, 편집샵, 클럽 등으로 베를린 힙스터 문화의 중심이 된 것은 그 역사적인 의미, 그리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베를린을 찾는 한국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편집샵 Voo Store나 보난자 커피 등이 있는 곳 정도로만 알기에는 아쉬운 크로이츠베르크 끝자락에, 오늘 소개할 독립서점 She said가 있다.
She said(쉬세드, 그녀가 말했다)라는 이름에서도 조심스레 추측할 수 있듯, 이곳은 여성과 성소수자 작가의 책(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젠더, 교차성, 페미니즘, 반차별 이슈와 관련된 책들이 주를 이루며 이 외에도 여성과 성소수자 작가가 집필한 소설, 논픽션, 잡지, 역사책 등 다양한 컬렉션이 있다. 아동을 위한 책도 다수 구비되어 있는데 주로 다양성, 젠더교육과 관련된 책들을 모아 두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된다.
2020년 여성 창업자 Emilia Von Senger가 시작한 She said는 여성 건축가와 여성 디자이너가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9명의 스탭 모두 여성이거나 성소수자인, 말 그대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서점이다. 아, 그렇다고 여성만 입장 가능한 것은 전혀 아니며 ‘존중’을 전제로 어떤 제약도 없이 모두를 환영하는 곳이다.
1970-80년대 독일에 등장했던 “Frauenbuchhandlung(여성주의 서점)”이 ‘여성’에 집중했다면, 그 두 번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She said는 ‘여성과 성소수자’로 확장하여 시대에 응답하고 있다. 알록달록 화려한 인테리어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젠더, 차별 관련 서적을 다 모아 놓은 듯한 서가에 마음을 뺏기고,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카페에서 풍기는 원두와 비건 베이커리의 향에 잠시 혼미해진다.
서점 한편 카페와 테라스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커피 한 잔을 하며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곳의 시나몬 번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두 번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맛을 보지는 못했다.
책방이면서 카페이면서 동시에 한 달에 1-2회 여성, 성소수자 작가와 함께 북토크 등 이벤트까지 진행하는 She Said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시간을 보내다 정신을 차리고 찜해두었던 수단음식 전문점 Sahara Imbiss로 간다.
독일에서 Imbiss는 가볍게 식사할 수 있는 작은 음식점을 말하는데, 우리로 치면 분식집 같이 단출한 식당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Sahara Imbiss는 아프리카 수단의 음식을 한 접시 골고루 담아 먹거나, 샌드위치처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비법땅콩소스가 모든 음식의 주인공인 듯한 이곳에서 비건옵션 Fallafel Teller (팔라펠과 야채, 땅콩소스가 버무려진 한 접시)를 시켜본다. 30분 내로 먹고 가는 저렴한 분식집이기 때문에 엄청난 미식을 기대할 수 없지만 처음 도전한 수단음식임에도 맛있고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She said 서점의 주변 3,4분 거리에도 훌륭한 비건옵션/전문식당이 많다. 이곳뿐만 아니라 체감상 베를린에는 거의 모든 식당마다 훌륭한 비건옵션이 있는 것은 기본이며, 모든 음식이 비건인 비건전문식당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보 9분 거리 Sahara Imbiss를 찾아간 이유는 이번 독일 여행을 계기로 만난 책 덕분이다. 저자 채혜원은 베를린의 IWS(국제여성공간, International Women Space)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베를린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라는 책으로 엮었는데, 난민여성이 가이드가 되어 난민운동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던 중 이곳 Sahara Imbiss를 언급한다.
“2010년부터 난민들이 운영해 온 곳으로, 다양한 수단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아 이미 베를린에 다섯 곳이나 지점을 냈다. 사하라임비스는 IWS 사무실 바로 옆 블록에 있어 우리 단골 가게이기도 하다. 나는 신선한 샐러드와 닭고기가 홈메이드 땅콩 소스와 어우러진 치킨 샌드위치를 주로 먹고, 비건인 동료들은 병아리콩을 갈아 둥글게 빚어 튀긴 팔라펠(Falafel)를 즐겨 먹곤 한다.”
-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중 '난민운동의 발자국을 잇는 방법', p 164
난민 지원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1-2%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낮은 난민인정률과 40%에 달하는 독일의 난민인정률을 비교하게 된다. 독일은 지난 10년간 무려 9백만 명이 넘는 난민을 맞이했다. 유럽 그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수치다. 꼭 난민이 아니더라도 독일 인구의 30퍼센트가량이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 사회의 다양성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을 위해, 또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로서 베를린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이 존재한다.
건물 점거 운동의 성지를 구경한 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She Said서점에서 다양성과 반차별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수단 난민이 창업해 지금은 베를린 곳곳에 지점을 둔 Sahara Imbiss에서 이국적인 한 끼를 즐기는 것 - 이게 저항의 상징 크로이츠베르크의 진정한 힙! 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글 김숲, 사진 Hajin
서점
* 이름 She said
* 위치 Kottbusser Damm 79, 10967 베를린 독일
* 책방 주요 큐레이션 성평등 전문 서점, 여성과 성소수자 작가가 집필한 소설, 논픽션, 잡지, 역사 등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책
식당
* 이름 Sahara Imbiss
* 위치 Reuterstrase 56, 12047 베를린 독일
*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Vegan Falafel Teller 7유로, 대부분의 메뉴 7-10유로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건물점거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문화공동체 무지개 공장(Regenbogenfabrik)에서 도보 12분, 편집샵 Voo Store에서 도보 18분
* 이 글을 작성하면서 아래 책들과 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 채혜원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2022
- 이계수 ‘반란의 도시, 베를린 - 도시와 주거의 새로운 길을 상상하기’, 2023
- 신희완, 오마이뉴스 ‘정말 못 생긴 '코티', 어떻게 베를린의 상징이 됐나’,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