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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자유, 다양성, 뉴노멀의 도시

독일 베를린 - 책방 Ocelot와 채식 브런치 카페 FREA

by 김숲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해외 9- [독일 베를린 - 책방 Ocelot, not just another bookstore와 채식브런치카페 FREA Bakery)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두 말할 것 없이 베를린이다.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대가의 상흔을 의도적으로 도시 전역에 남겨둔 곳, 인류의 가장 어두운 역사에 대한 책임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도시, 동서 분단이라는 비극을 겪고 그 독특하고 고유한 토양에서 유럽에서 가장 힙하고 가장 혁신적인 문화를 키워낸 도시. 이 이상 어떤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역사, 정치, 문화, 예술 모든 면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적어도 20년은 미래로 온 것 같은 이 도시는 아직도 진한 여운으로 남아 지금도 문득 ‘아 베를린 가고 싶다~’는 말을 뱉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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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다양성’, ‘개성’과 같은 가슴 뜨거워지는 단어들로 가득 찬 이 도시에서 3주를 보내고 나니, 베를린이 유럽 최고의 비건 친화도시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전 세계 채식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인 ‘해피카우(Happy Cow)’에 따르면 베를린 시내에 무려 1,772개의 비건 친화적 식당/카페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식당에 당연히 비건 옵션이 있고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비건 식당이나 카페를 발견하게 되는 곳이 베를린이다.


베를린이 유럽의 그 어떤 도시보다 더 비건 친화적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1970년대 처음 유기농 식품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음식의 원산지에 대해 주의하는 분위기가 독일 전역에 유행했다고 한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전후로 특히 서독의 창의적이고 모험적이며 실험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서베를린으로 이주하면서 베를린이 새로운 문화,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기 좋은 배경이 되었고 2000년 이후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지향하는 식습관이 완전한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베를린에서 채식과 기후위기를 연결 짓는 흐름의 선구자 중 ‘프레아(FREA)’가 있다. 베를린 최초의 비건 & 제로웨이스트 식당을 선보인 프레아(FREA)는 현재 비건 다이닝이 가능한 레스토랑 ‘프레아(FREA)’와 비건 베이커리류 및 비건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프레아 베이커리(FREA Bakery)’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과 카페 어디서 무엇을 먹든 재료보관, 조리 및 서빙 어느 과정에서도 일회용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음식 쓰레기는 대체토양으로 만들어져 프레아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가에 비료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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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중 프레아 베이커리(FREA Bakery)를 방문해 오트우유를 넣은 카페 라테와 대표 메뉴인 버섯볶음 토스트, 아보카도 토스트를 시켜보았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맛있는 음식 - 사실 여느 브런치 카페와 다름없지만 내가 이곳에서 소비한 것으로 어떠한 동물도 고통받지 않았고, 또 어떤 쓰레기도 나오지 않는다는 꽤나 뿌듯한 사실 덕분에 프레아에서의 시간 전체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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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친 뒤, 베를린과 다양성, 베를린과 채식을 곱씹어 보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독립서점 ‘오셀로, 유일무이한 서점(Ocelot, Not Just Another Bookstore)’로 간다. 자부심 가득한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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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성수동 미떼(Mitte) 지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서점은 2012년에 오픈해 벌써 10년이 넘게 운영 중이다. 소설과 시, 그리고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소규모 독립출판 서적들로 가득 찬 이곳에는 반갑게도 영어책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나 같은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마침 6월 ‘성소수자차별반대의 달’을 갓 지난 시기여서 인지 서점 한편에 “성소수자(Queer)”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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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Volkspark am Weinberg)을 마주 보고 있는 덕에 서점 어디서든 책을 고르다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림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영어책 코너에서 발견한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날씨에 대하여’라는 책을 사서 서점 안 카페에 앉아 지난 3주간의 베를린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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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과거 역사로 인한) 베를린의 쇠퇴와 재건이 이 도시를 새로운 아이디어와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번식할 수 있는 땅’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우리가 본 베를린은 정말 그랬다.


최대한 타인과 겹치지 않는 개성 그 자체가 유행인 것 같은 패션 트렌드, 여기가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식당, 주제별로 언어별로 다양한 콘셉트의 서점들, 성소수자들의 자유로운 자기표현, 채식주의자가 특별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을 수 있는 이곳이 지금 유럽에서 스타트업이 가장 몰리는 핫한 도시가 된 것은 필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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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여행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런 미래가 올까?라는 회의 섞인 질문이 기대에 찬 확신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해 준 베를린 - ‘여행을 통해 견문이 넓어진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베를린으로 떠나보길 권하고 싶다.


글 김숲, 사진 Hajin


서점

* 이름 Ocelot, not just another bookstore

* 위치 Brunnenstrase 181, 10119 베를린 독일

* 책방 주요 큐레이션 소설, 시, 영어책

식당

* 이름 Frea Bakery

* 위치 Gartenstrase 9, 10115 베를린 독일

*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커피메뉴 3~5유로, 오전 9-오후 3시까지 주문가능한 브런치 메뉴 15유로 내외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카페 기준 베를린 장벽 기념관 도보 13분, 서점 기준 마우어파크 도보 17분


* 이 글을 작성하면서 아래 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 The Berliner, 'Ocelot bookstore: “Come in and be surprised!”,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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