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엔 항상 네가 서 있었다-12
어제 웅크렸던 식물도 기지개를 켜는, 저마다 자신의 페이지를 펼치는 아침이다. 덩굴은 유연한 손을 뻗어 곡선을 잇는다. 선과 선이 제대로 만나야 뜻을 이룬 단어가 완성되듯 마음도 제대로 맞닿아야 온기로 전해진다. 내가 만든 선은 어느 곡선과 맞닿아 온기를 완성할까.
하늘을 품고 싶어
온종일 푸른색만 칠하다가
나무와 구름까지 그린 연못
작은 심장으로 어디까지 껴안을까
밤하늘까지 품었지만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없어
넙데데한 하늘만 보다가
맹숭맹숭 바람만 붙들다가
지나가는 나비만 따라갔다
저 작은 물 안에
세상이 다 들었다
일렁임도 꿈같은 그곳은
바람 불면 흐려지고
비가 오면 지워지는 수채화
물도 바람도 잠든 오후
여름은 지나갔지만
그곳엔 아직도
느린 걸음으로 꿈을 낚고
계절을 잇는
느린 화가가 살고 있었다
화단에 자라는 봉숭아는 아담하게 자라 꽃을 피운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봉숭아는 성인키만큼 쑥 자라 나무를 방불케 한다. 굵직한 줄기는 성인 손가락 굵기보다 크고 튼실하다.
한계는 스스로 결정한다.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순간 가능성은 거기서 멈춘다. 선이 없는 곳에선 봉숭아도 나무만큼 자란다. 우리가 그어놓은 선은 스스로 절단시킨 가능성은 아닐까.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낙엽인가 했더니
호랑나비였구나
나비인가 했더니
여름 몰래 내려온
가을이었구나
의자는 오늘도 기다림이다. 온기를. 사람을. 지나간 시간을 기다린다. 우두커니 앉아 빛나던 순간을 떠올린다. 초록딱지가 낙인처럼 새겨진 심장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고장 났다고 낡았다고 거리로 내모는 사람들. 진작 고장 난 건 의자가 아니라 물건을 쉽게 버린 마음 아닐까.
시를 쓸 땐 수필을 못 본 척했고 수필을 쓸 땐 시를 잊었다. 같은 언어지만 엎어지면 닿을 거리지만 어쩌다 한 번 마주하면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어설프게 만난 모음과 자음은 시가 되었다가 산문이 되었다가 소 뒷걸음질에 쥐 잡듯 간간히 소설의 넝마를 입기도 한다.
나는 알다가도 모를 신비한 세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