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엔 항상 네가 서있었다-13
아침에 눈떠보니 문이란 문은 죄다 열려 있다. 창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깜빡 잠들었나 보다. 밤새 바람이 쓸고 간 거실기온이 24도로 쑤욱 내려갔다. 덕분에 무기력이 달아난 아침이 쾌청하다. 집 안에 가득한 시월의 발자국. 밤새 가을이 다녀 갔다 보다.
당신은 구름 같아서 눈앞에 있어도 다가설 수 없다. 만질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다. 유유히 떠나는 모습만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한 뼘 자란 빗물이
대지를 물들이면
노랗게 빨갛게 가벼워집니다
긴 머리를 자르고
묵직한 열매를 떨구고
잘 여문 여름도 내려놓습니다
침묵을 지우지 않아도
비워낸 가을은
향기로 옵니다
풀벌레 소리는
자장가가 되고
돌멩이 소리가
악기인 가을은
소리로 옵니다
밤새 내린 가을비에
계절은
또 한 뼘 자라납니다
가을편지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린다. 풀벌레, 새, 낙엽도 빗소리에 귀 기울이는 오후, 구월의 비가 어제를 지우면 바람은 소리 없이 내일을 채워간다.
이른 아침부터
뒹구르르 구르던 낙엽
콧노래 부르는 트럭을 발견했다
호기심쟁이 아이처럼
트럭 꽁무니를 와그르르 따라
강강-수월래
뒤쫓다가 멀어지다가
꼬리 잡는 고양이 따라
강강-수월래
보름달은 아직이지만
그리움 앓던 반달도
새초롬한 초승달도
빙글빙글 잘도 돈다
졸린 눈 비비던 해님도
두 눈 번쩍 뜨이도록
강강-수월래
새도 풀벌레도 자유로운 산중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육신이 무거운 건 다만 잡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걱정과 불안은 산속에 흘려두고 오로지 걸음에만 집중한다. 나무, 풀, 흙, 돌 뿐인 산은 무엇도 욕심내지 않는다.
10월을 이틀 앞두고 써 내려가는 한 주의 시작은 씻겼다가 쌓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산을 올라간 적도 내려간 적도 없던 처음의 출발선으로.
산 정상에는 오아시스 같은 정자가 있다. 정자에 걸린 풍경이 하늘을 난다. 바람 불면 청명한 소리로, 비가 오면 지난 기억을 불러내는. 덜어내도 쌓이는 먼지는 그대로지만 삐걱대는 마음은 산속에서 비로소 수평이 된다.
아름다움은 빛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미련 없이 비우는 단호함에 있다. 더 가지려고 머물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빛을 잃어간다. 주먹을 쥘 때 보다 펼 때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처럼.
* 긴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보름달보다 환하고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길요!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