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이거 혹시 버리시나요?
버려지는 거면
저희 교실에 가지고 가도 될까요?
4월의 어느 봄날,
버려질 뻔한 피아노를 가지고 오던 날
"교실에 피아노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88 건반 전자 피아노, 옛날 모델이라 은근 부피가 큼직했어. 오래돼서 낡은 피아노들을 정리하는 날이었나 봐. 버려지는 영혼들이 따닥따닥 시청각실 한편에 붙어 있었지. 와, 혼자서 낑낑대면서 힘주어 끌어봤는데 혼자 서는 도저히 못 가지고 오겠더라고. 나 힘 진짜 세거든? 그런데 피아노 다리가 어딘가 아픈지 흔들흔들하니 무작정 밀고 끌 수도 없더라고. 쿵 하고 부서질까 봐. 난 사실 아이들에게 서프라이즈로 짜잔! 선물처럼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현실은 너무 크고 불안하고 무거웠던 거야. 하교시간 종이치고 나서 잠시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세 명을 모집했고 우리 네 명은 피아노를 교실로 데리고 들어왔어. 교실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피아노가 막상 들어오니까 어디에 놓아야 될지 모르겠더라. 그러다가 교탁과 칠판 사이 남는 공간에 놓아두게 됐지. 그렇게 우리 반에는 뭔가 특별한 손님이 하나 추가 되었어.
모퉁이랑 다리가 조금 헤진,
희끗희끗한 갈색 피아노가 그렇게 우리 교실로 왔다.
"전학 온 피아노의 첫인상은 어땠어?"
나무건반과는 다른 플라스틱 소재의 가벼운 건반, 전자 피아노에 손가락이 닿는 느낌은 라이트업 피아노보다 못했지만 나름 쓸만했어. 꾹 눌러도 건반 높이가 살짝 낮아 누르다가 마는 느낌, 건반을 누를 때 그 음의 크고 작은 울림이 표현되지 않는 점 등이 아쉽긴 했지만 말이야. 교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지.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은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거나 온라인 수업이 더 많았고 아이들과 얼굴 마주하 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어. 코로나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게 작년이었지? 마스크 벗고 얼굴 바라보며 소통하는 제대로 된 교실 수업이 시작되는 시즌이었거든. 마스크 쓴 아이들과 서로의 눈만 보고 소 통하고 수업했지. 그런데 피아노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 반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어. 진짜 새로운 전학생이 온 것 같았어.
아이들에게서
어릴 때의 나를 만나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작했었어. 6살에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언니 오빠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나랑 같은 학년이었던 재밌는 기억도 남아있고. (지금은 사라진 7살에 학교 들어간 빠른 년생). 어른이 되고 나서 건반을 눌러보는 게 아주 오랜만이었어. 어린 나의 손이 기억하는 체르니 곡 몇 가지, 별 거 아닌 연주였지만 내가 먼저 피아노를 치니까 아이들도 조금씩 피아노 주변으로 모여 왔어.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친구들, 집에 누나가 배우는 피아노가 있어서 뚱땅뚱땅 쳐본 아이들,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원에서 한 번쯤은 만져봤을 법한 사물이 들어오니 아이들의 관심도가 높아졌지. 다양한 버전의 전자음도 탑재돼 있고! 그렇게 그날부터 우리 반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다행히 우리는 5층 끝 교실이어서 시끄러운 우리가 좀 숨어 있을 수 있었지. 새로운 전학생과 우리는 사부작사부작 즐거운 추억을 쌓기 시작했어.
작가의 조금 더 개인적인 공간
#kate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