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가시노 게이고, 《백야행》 & 《환야》
B28. 악녀들에 대한 인간 탐구, How & Why / 《백야행》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태동출판사 & 《환야》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랜덤하우스코리아
히가시노 게이고 독서 편력
제가 처음으로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편지》였습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제 손에 들어온 것이 그 작품이었습니다.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악의》의 첫머리에 나오는 저 ‘고양이 에피소드’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얼마나 무시무시한 선입견을 조장했던가를 떠올려 보면, 《편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한갓 추리소설 작가로만 받아들이고 말았을 위험을 미리 막아주었다는 점에서, 또는 희석해 주었다는 점에서 참 다행이었다는 뜻입니다.
닮은 꼴의 두 주인공
듣기로, 작가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는 견해인 듯한데, 《백야행》과 《환야》가 연작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라는 시각이 독자들 사이에서는 어지간히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작품은 정말 쌍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만큼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합니다.
전체 이야기 구조도 그렇고,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 구성도 그렇고, 나아가 작가로 치면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라고나 해야 할 저 그림자 같은 남자 조력자(유키호한테는 기리하라 료지, 미후유한테는 미즈하라 마사야)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낱낱의 사건들, 주제, 그리고 결말까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역시 주인공이겠지요.
바로 유키호와 미후유입니다.
이 두 여인은 확실히 이름만 다르지, 실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독자로서 별다른 저항감을 못 느낄 만큼 무섭도록 닮은 꼴입니다.
제가 두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면 유키호 역과 미후유 역을 한 배우에게 맡길 것입니다.
하얀 밤과 환각의 밤
한데, 이런 식으로 견주어 보는 것은 그저 기계적인 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분명히 ‘같다’, 또는 적어도 ‘비슷하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마음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마음이 서로 따로 노는 것이지요.
저도 유키호와 미후유가 분명히 서로 닮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두 인물한테서 받는 느낌은 분명히 서로 다릅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차이를 ‘하얀 밤(백야)’과 ‘환각의 밤(환야)’의 차이라고 규정해보고 싶습니다.
분명히 개념이 다릅니다. 느낌도 다르고요. 그러니까 다르다면 ‘딱 그만큼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비슷함과 다름
저는 이 두 작품을 읽기 전에 이미 《백야행》의 유키호와 《환야》의 미후유가 서로 비슷하다는, 심지어 같은 인물이라는 소리를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제법 많이 얻어들은 터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두 작품을 읽고 나서는 두 인물로부터 제가 받은 느낌이 서로 너무나 다른 탓에 ‘도대체 뭐가 비슷하다는 거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다를까? 어째서 두 인물한테서 이토록 다른 느낌이 나는가? 분명히 머리로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 쌍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두 인물은 서로 비슷한데, 심지어 똑같다고 말해도 될 듯한데, 실제로 내가 받는 느낌은 어째서 이토록 다른 것일까?’
그 까닭은 어렵지 않게 찾았습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두 작품은 주인공을 다루는, 또는 주인공한테 접근하는 태도가 서로 상당히 다릅니다. 아마도 작가가 짐짓 그렇게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면 감추기와 드러내기
한마디로, ‘유키호의 내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미후유의 내면은 제법 드러난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유키호한테는 독자가 감정이입 할 여지가 별로 없지만, 미후유한테는 독자가 감정이입 할 여지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작가가 일종의 진술 주체, 또는 화자(話者)의 구실을 유키호한테는 거의 맡기지 않았지만, 미후유에게는 제법 적지 않은 비중으로 맡기고 있는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유키호는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거의 하지 않지만, 미후유는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적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키호의 내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미후유의 내면은 제법 드러납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자연스럽게 《백야행》은 유키호가 실패하기를 바라면서 읽지 않을 수 없었고, 《환야》는 미후유가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키호한테는 감정이입이 깊이 되지 않았고, 미후유한테는 감정이입이 제법 깊이 되었던 것입니다.
덜 드러내기와 더 드러내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살인까지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는, 유키호의 경우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미후유의 경우는 어지간히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유키호의 경우는 행적과 그 결과만이 눈에 띌 뿐이지만, 미후유의 경우는 그 행적과 결과의 배경까지도 독자한테 전달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본마음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백야행》에서 주인공 유키호를 그저 악녀 이미지로만 거의 일관되게 그렸던 아쉬움을 《환야》에서는 주인공 미후유의 내면을 적지 않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마침내 풀었다고 하면 될까요.
덕분에 미후유는 유키호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백야행》이 미스터리 활극이라면, 《환야》는 미스터리 로맨스인 셈입니다.
독자의 욕망
이 두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속절없이 ‘독자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주인공이 범인인 경우, 그러니까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일 경우에 말입니다.
이는 선악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행적에 어떤 배경이 놓여 있는가, 또 그 배경을 얼마나 드러내는가에 따라서 그 범인에 대한 독자의 마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싶은 것입니다.
선하다고 편들고 싶고, 악하다고 편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셜록 홈즈만 매력적이고, 아르센 뤼팽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차원이 조금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백야행》과 《환야》를 읽는 독자의 욕망이 달라지는 경계 지점이 놓여 있습니다.
제가 《백야행》의 경우는 주인공 유키호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기를, 그러니까 하루빨리 유키호가 경찰에 체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고, 《환야》의 경우는 주인공 미후유의 목적이 무사히 달성되기를, 그래서 끝내 경찰에 체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는 언급은 앞서 이미 했습니다.
달리 말해서 저는 《백야행》은 유키호의 활약상을 구경하는 재미로 읽었고, 《환야》는 도대체 미후유는 어떤 인물인가, 하는 궁금증을 풀어가는 재미로 읽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두 작품은 각기 다른 부위에서 독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백야행》보다는 역시 《환야》 쪽입니다.
인간 탐구, 없거나 있거나
어쩌면 이는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가운데서 비교적,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정격(正格)이라고 할 수 있을 《편지》를 가장 먼저 읽은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곧,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기(長技)가 어디에 있는가를 작품 전체를 놓고 따지는 견지에서라면 《편지》는 다소 예외적인 작품이겠지만, 저를 가장 먼저 매료시킨 《편지》의 어떠함이 뒷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그 어떠함이나 그 어떠함과 관련된 그 무엇을 제가 계속 기대하도록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어떠함’, 이 ‘그 무엇’이 《백야행》에는 없거나 적었고, 《환야》에는 적지 않게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에 저는 ‘인간 탐구’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환야》의 인간 탐구가 《백야행》의 인간 탐구보다는 조금 더 윗길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인간 탐구’가 독자인 저의 욕망을 몹시도 날카롭게 자극합니다.
발전, 또는 성숙의 궤적
따라서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환야》에 이르러 《백야행》 때보다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또는 발전했다고 감히 평가합니다.
아니, 적어도 조금 더 성숙해지고 발전한 상태에서 《환야》를 썼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어떻게’보다는 ‘왜’가 더 성숙하고 발전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의 궤적이 ‘어떻게’에서 ‘왜’ 쪽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추리소설 작가로서 점점 더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밟아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백야행》이 ‘누가 어떻게?’ 쪽이라면 《환야》는 ‘누가 왜?’ 쪽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어떻게(How)?’보다는 ‘왜(Why)?’가 더 궁금한 독자의 부류에 속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