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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Aug 20. 2024

My Cinema Aphorism_10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0

CA46. 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2024)

   언젠가부터 시작된 무한반복의 일상, 그리고 그 엄중하고 어김없는 하루의 루틴. 그 루틴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구현되는 하루하루. 그 ‘완벽한(퍼펙트) 나날들(데이즈)’―. 하지만 거기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외부의 작용도 끊임없이 진행된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를 올곧게 지키는 것은 늘 변화하는 자연계의 법칙에 맞지 않는, 나아가 그 법칙을 거스르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야쿠쇼 코지)는 그 외부의 ‘힘’에 맞서 자신의 루틴을 지키려는 의지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아마 그 루틴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타의로 그 루틴이 망가지면 그는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관객은 그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아니, 영화는 그에 대해서 관객에게 거의 아무것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지만, 관객은 그의 루틴이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위태위태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아니, 루 리드의 ‘Pale Blue Eyes’가 속절없이 불러일으키는 지난 세기 〈접속〉(1997, 장윤현)의 낭만적인 기억. 그리고 꿈 장면의 흑백 이미지들과 영상 컷들의 나열, 그 전시(展示)의 꿈결 같고 마법 같은, 잊기 힘든 시각효과. 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니, 완벽해(퍼펙트)!     


CA47. 그레타 거윅, 〈바비〉(2023)

   바비를 여전히 동경하든, 새로이 미워하든, 다시 동정하든, 그래도 지지하든, 아니면 바비와 이제부터 연대하든, 바비도 우리도 결국은 ‘인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아니, 결코 다를 수 없다는 이 엄중한 진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인간이 과연 어떤 인간이냐, 하는 데 대한 진지한 논의일 터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에 대한 해답을 못 찾아냈으니까.     


CA48. 박영주, 〈시민 덕희〉(2024)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가 왜 그토록 심하게 물리적인 폭행을 당해야 했는지. 이 영화는 액션영화가 아닌데도. 이 질문에 대한 윤리적인 답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나친 노파심의 발로일까.     


CA49. 폴 킹, 〈웡카〉(2024)

   조니 뎁이 티모시 샬라메한테서 떨어져 나와 있는 거리,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가 조니 뎁을 향해 다가가면서 좁혀진 거리. 아마도 이 거리의 합리성과 미학성이 초콜릿 장인(匠人)의 존재에 대한 신뢰감을 결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CA50. 고레다 히로카즈, 〈괴물〉(2023)

   총체성을 넉넉히 조감할 자신이 없으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그 어떠한 논평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그 누구도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괴물이 되었다면, 그때부터 우리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발언권이 없으니, 심판권은 더더욱 있을 리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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