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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26. 2024

My Cinema Aphorism_27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7

CA131. 오즈 야스지로, 〈대학은 나왔지만〉(1929)

   러닝 타임 12분짜리 단편 무성 영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대학을 나온 남자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접수 보는 일 따위는 대졸자 신분인 자기에게 하찮은 일이라며 모처럼만의 취업의 기회를 마다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김없이 냉혹하고, 대졸 경력 따위는 그 현실 속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 결국 남자는 모든 자존심을 꺾고 접수 보는 일에 지원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그의 겸손한 태도가 회사 경영진의 마음에 들어 그는 정식 사원으로 취업하게 된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 공감과 반전의 휴머니즘. 더불어 새파랗게 젊은 시절의 다나카 기누요를 볼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


CA132. 고이즈미 다카시, 〈박사가 사랑한 수식〉(2006)

   박사가 사랑한 것은 수식(數式)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는 윌리엄 블레이크가 꽃 한 송이에서 영원을 본다고 노래한 것처럼 그가 수식 하나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는 그가 어린 소년 ‘루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속에는 참 지혜로운 것이 들어 있을 거야”라고 칭찬해 주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CA133. 장이머우, 〈황후화〉(2006)

   왜 반란은 실패하는가? 이는 도전자가 챔피언을 챔피언의 홈에서 꺾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실패가 초점일 수 없다. 그것은 매우 지당한 사태이므로. 요는 그런데도 반란을 기도한 이유다. 그 심리적 바탕이다. 그 운명적 선택의 배경이다. 황후는 결혼했고, 사랑했고, 반역했다. 결혼은 정략이었고, 사랑은 본능이었고, 반역은 운명이었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반역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반역의 대상이었던 왕은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 실패한 반역이 심리적 성공이라는 이 가공할 만한 아이러니.


CA134. 김성중, 〈연리지〉(2006)

   연리지(連理枝)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공멸(共滅)의 스토리가 될 수밖에 없다. 연인 쌍방이 모두 불치의 병에 걸려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그 사실을 본인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조건에서 쌍방이 만나 연애를 하는 스토리를 택하지 않았을까.


CA135. 김명준, 〈우리학교〉(2006)

   두 번째로 볼 때도 감동의 밀도가 거의 희석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는 기이한 다큐멘터리.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쯤은 해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그 ‘우리학교’의 아이들이 부르는 몇 곡의 감동적인 노래들을 빼버린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노래들에 대한 감흥과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약간은 의심스럽다. 그리고 안타깝다. 그 감동이란 그들에게 ‘우리학교’라는 것이 더는 필요 없는 떳떳하고 행복한 세상이 도래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이면에 숨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히 변할 것이다. 그것이 전락이건 타락이건, 그들이 무슨 별종이 아닌 한, 우리가 이렇게 변해 있듯이 그들도 변할 것이다. 그 변화 이전의 그들의 모습이 감동의 원천이라면, 이것은 대단히 위태로운 감동이다. 이 변화에 대한 근심을 이 다큐는 감동과 한 묶음으로 우리에게 건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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