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Dec 05. 2024

My Cinema Aphorism_29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9

CA141. 이안, 〈헐크〉(2003)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임을 입증하려 애쓰는 슈퍼 히어로 영화. 사랑이 없으면 그 누구라도 한순간에 분노로 달아올라 처치 곤란한 끔찍한 괴물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숨은 지적. 이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이 영화는 거침없이 보여준다. 오로지 CG만으로 이루어진 괴물 헐크가 스크린 위에서 날뛰고 있는데도 느껴지는 이 영화의 실감은 바로 거기에 기반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누구라도 헐크가 될 수 있지만, 그 헐크를 얌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사랑뿐이라는 상투적이면서도 동화 같은 기이한 전언.


CA142. 알프레드 히치콕, 〈현기증〉(1958)

   네크로필리아, 또는 복제품에 대한 애호. 모든 비극의 원인은 남편의 농간인데, 왜 영화에서 그 남편은 감쪽같이, 은근슬쩍 삭제되고 말았을까. 영화에서 심판받는 것도 남편이 아니라, 남편의 농간에 응했던 여인 킴 노박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마지막 순간 고소공포증에서 해방되어 악몽 같은 기억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심판의 또 다른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히치콕으로 특화된 이야기 구조의 시연.


CA143. 알렉스 잼, 〈형사 가제트2〉(2003)

   파트너로 여자 가제트를 등장시키는 것은 〈터미네이터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2003, 조나단 모스토우)의 콘셉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가제트는 오늘도 세상 고민 없이 즐겁다. 이것이 이 영화, 또는 이 영화의 원작 애니메이션의 특장이다. 그는 인조인간이므로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죽을 위험성에 대한 관객의 우려는 얼마간 불필요한 감정 낭비가 된다. 다치면 치료하면 되고, 고장나면 수리하면 되니까. 이것이 가제트가 결코 파멸하지 않는 물리적인 까닭이다.


CA144. 허우 샤오시엔, 〈호남호녀(好男好女)〉(1995)

   영화 속 현재 시점에는 영화배우 리앙 칭이 있다. 그녀한테 출처 불명의 곳에서 팩스가 계속 들어온다. 거기에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 속 영화’ 〈호남호녀〉의 내용이 겹치고, 그녀가 자기 애인과 보냈던 3년 전의 삶이 또 하나의 시간 축을 이룬다. 여기서 영화 속 영화 〈호남호녀〉의 시간적 배경은 재현된 역사로서 또 하나의 시간 축에 해당한다. 과거와 현재가 얽혀드는 양상은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전체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산이 부서져 있는 형국. 이런 기반 위에서 애인을 잃은 현재의 배우와 역시 애인을 잃은 과거 여인의 삶이 서로 대비되며, 마침내 어떤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역사가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정치적 수난의 역사와 대만의 현대사가 서로 얽히고설키고 드는 이 양상에 감독은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CA145. 후루하타 야스오, 〈호타루〉(2001)

   ‘호타루(ほたゐ)’는 ‘반딧불이(개똥벌레)’다. 다카쿠라 켄의 방한(訪韓)은 과연 속죄의 의미인가. 그렇다면 이 속죄를 무엇보다도 우선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감행해야 한다는 전언으로 새길 수도 있지 않을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