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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80. 내 집 한 채의 소망

  - 김상진, 〈귀신이 산다〉

by 김정수 Mar 10. 2025

C80. 내 집 한 채의 소망 - 김상진, 〈귀신이 산다〉(2004)

네(내) 집을 꼭 사라

   요즘은 사정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기는 하지만, 우리네 서민들의 가장 큰 소망이 ‘여전히’ 내 집 마련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이라는 단서가 이미 암시하고 있듯 그것은 가장 이루어지기 어려운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지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소망입니다. 포기할 수 없기에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가는, 아니, 그 꿈을 유일한 버팀목 삼아 팍팍한 삶을 가까스로 견뎌내는 서민들의 가슴에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빚어지는 온갖 수모와 억울함과 절망이 씻어낼 수 없는 한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어쩌면 운명적입니다.

   아니, 이제는 ‘운명적이었다’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각종 법규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상호 보호 장치들이 마련되었고, 또 계속 마련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그래도 이 영화 속에서 임종의 순간 아들을 향해 한 노인의 입에서 비어져 나온, “너는 네 집(또는 내 집!)을 꼭 사라!”라는 유언이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적시고 드는 것은, 적어도 아직은, 속절없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런 한(恨)을 ‘인간적으로’ 어찌 이해할 수 없겠습니까.


하나의 집, 두 개의 한

   이 영화의 주인공 필기(차승원)는 바로 아버지(윤문식)의 그 유언이 필생의 목적이 된 남자입니다.

   게다가 그 아버지는 홀아버지고, 그 아들은 외아들입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기둥이지요.

   여기에 사랑하는 남편과 어렵사리 마련한 ‘내 집’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단꿈에 부풀어 있던 한 여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자신은 목숨을 잃어 원귀가 되고, 남편은 행방불명이 된 딱한 이야기가 또 하나의 기둥으로 덧붙습니다. 연화(장서희)가 바로 그 여인이지요.

   행복의 출발점에서 그 행복을 미처 누려보지도 못하고 졸지에 이승을 하직한 한 여인의 풀 길 없는 한(恨) 또한 ‘집’에 관련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 두 남녀의 한이 똑같은 한 채의 집에서 만나 서로 얽힌다는 기묘하면서도 딱한 사정입니다.


한이 서린 공간, 한을 푸는 장소

   낮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해온 필기가 마침내 내 집 마련에 성공하여 이사를 왔는데, 공교롭게도 그 집이 바로 생전의 연화가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 나갈 예정으로 세워 올린 집이었던 것입니다.

   기묘하게도 한쪽의 한이 서린 공간이 다른 쪽의 한을 푸는 장소가 되어버린 형국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절묘한 궁합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천만에요.

   생전에 못다 이룬 소망에 대한 한을 품고 죽은 연화는 귀신이 되어, 자기와 함께 사고를 당한 뒤 행적이 묘연해진 남편이 언젠가는 두 사람의 꿈이 서린 문제의 집으로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도무지 떠날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사 오는 족족 귀신 특유의 신통력을 발휘하여 그들을 그 집에서 쫓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화에게 그 집은 누구에게도 양보 못 할 보금자리인 탓입니다. 연화는 목청 높여 주장합니다.

   “이 집은 내 집이야!”

   그러니까 필기는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현혹되어 귀신 붙은 집인 줄도 모르고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단걸음에 이사를 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인간과 귀신의 만남이라는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는 서로가 상대방을 제 보금자리에서 몰아내려는 사투(死鬪)에 가까운 만남이기도 합니다. 한이 깊은 만큼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어찌 되었든, 연화에게처럼 필기에게도 그 집은 명실상부한 ‘내 집’이니까요.


공포라기보다는 코미디

   그러니, 이렇게만 정리를 하고 보면, 이만저만 절절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니, 놀랍게도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그것도 〈주유소 습격사건〉(1999), 〈신라의 달밤〉(2001), 그리고 〈광복절 특사〉(2002)의 감독 김상진의 코미디지요.

   하니, 인간 필기와 귀신 연화와의 만남도 우리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의 그것처럼 가슴 깊이 맺힌 한을 서슬 푸르게 강조하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포의 양상도 결코 가파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귀신 붙은 집에서 귀신한테 혼쭐나는 한 사내의 우스꽝스러운 작태들을 보여주는 데에만 러닝 타임의 절반쯤을 아낌없이 할애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중간쯤에 이르면 어느덧 필기의 한 따위는 종적이 묘연해져 버리지요.

   영화가 애초의 정서를 회복하는 것은 연화의 이야기가 회상으로 끼어들면서부터입니다. 왜 연화가 귀신이 되어 그 집을 떠나지 못하는지, 그 감추어져 있던 아픈 사연이 밝혀지는 것도 이 대목에 이르러서입니다.


귀신과 인간의 상부상조

   이제 영화는 결말을 충분히 예단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서로를 ‘내 집’에서 몰아내고자 티격태격하며 같은 공간 안에서 지내는 동안 그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급기야는 함께 연대하여 상대방이 각기 제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또는 해원(解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면에까지 다다릅니다.

   어느덧 흡사 무당처럼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필기는 연화가 당한 교통사고의 현장에까지 몸소 찾아가 같은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곳을 배회하는 원귀(寃鬼)들을 만나 연화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합니다.

   그렇듯 만난을 무릅쓰며 동분서주한 끝에 필기는 마침내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는 연화의 남편을 찾아내 연화의 소망을 이루어주고야 맙니다.

   연화 또한 갑자기 필기의 집을 허물고 그 터 위에 호텔을 지으려는 악덕 자본가의 뜻밖의 음모를 막는 데 귀신만의 방법으로 일조합니다.

   이로써 연화는 남편과의 행복을 죽어서나마 이루었고, 필기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살아서 이루고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신과 인간의 상부상조가 빚어낸 소원 성취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귀신 사이의 이 엉뚱한 연대가, 이야기 구조상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기이하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스러운 까닭은 그것이 ‘내 집’에 대한 서민들의 저 유구하고도 절절한 꿈과 소망에 얽힌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함에도 현실은 여전히 그 단순한 행복을 결코 호락호락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꿈과 소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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