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13번째 나라, 1번째 도시
베를린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도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라 이동시간을 줄이려고 암스테르담의 중심부에 가까운 숙소를 찾아보는데 에어비앤비보다 오히려 호스텔 금액이 더 좋아서 수시로 운행하는 무료 페리로 중앙역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의 클링크노르드(ClinkNOORD) 호스텔을 예약했다.
침대는 벙크 베드였지만 객실에 욕실이 있어서 우리끼리만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호스텔이라 지하에 넓은 주방이 있어서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차려먹을 수 있었다. 체크인 전 배낭을 맡아주는 서비스는 기본이고, 공용 라운지 공간을 대기 공간으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합리적인 금액에 좋은 숙소를 잘 찾은 거 같아서 만족했다.
간만의 장거리 야간버스 이동으로 피곤했는데 체크인은 기다려야 해서 공용 라운지 공간의 편안한 소파 자리를 찾아서 구경하러 나가기 전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피로가 가신듯해서 큰 배낭을 맡겨놓고 안네 프랑크 집(Anne Frank House)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 필독도서라 읽었던 <안네의 일기>의 저자인 안네 프랑크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을 잡아서 죽이는 것을 피해서 숨어 지내면서 일기를 썼던 집이다.
초등학교 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체감을 못했고 성인이 된 후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를 통해서 시각적으로도 보게 된 후에야 독일 나치가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두 가족이 숨어 살았던 공간을 보는 건 책으로 읽고 영화로 보는 것보다 더 현실로 다가왔고 이 끔찍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역사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수용소로 끌려간 많은 유대인 희생자들 중의 하나로 조용히 잊힐 뻔했던 어린 여자아이는 혼자 살아남게 된 아빠가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후 가족들을 찾다가 발견한 일기장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절대 잊힐 수 없는, "안네 프랑크"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중요한 증인이 되었다.
아픈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며 집중해서 안네 프랑크 집을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나오자마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느꼈다.
큰 배낭은 없었지만 중요한 물건을 옮겨 담은 작은 배낭이 여전히 무거웠고 야간 버스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나도 난데, 남편은 급 방전돼버렸다.
우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대했던 운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렇게 지친 상태로 돌아다니다 몸 상태가 더 나빠지면 오히려 남은 기간 동안 여행은커녕 요양만 해야 할 수도 있어서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체크인 후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에 장 보러 가면서 야경 정도만 보러 나가기로 했다.
첫날 안네 프랑크의 집 밖에 다녀오지 않아 네덜란드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순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느꼈으니 비싼 물가였다.
서유럽, 북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동유럽인 체코 프라하에서의 한 달 살기와, 저렴한 마트 물가와 현지인 숙소가 가능했던 독일 베를린을 여행하다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원래도 물가가 높은 걸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물가가 비싼 것이 피부로 확 느껴졌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도착해서 페리를 타고 호스텔로 넘어가기 전에 배가 너무 고파 마트에서 일반 김밥의 반줄 정도 되는 초밥롤 2팩과 삼각김밥, 그리고 물을 샀을 뿐인데 2만 원이 훌쩍 넘었다. 2만 원어치나 되는데 배가 부르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게 그나마 외식하는 거보다 저렴한 물가라는 사실에 놀랐다. 저녁에 장 보러 가는 길에 사 먹은 네덜란드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감자튀김은 콜라랑 같이 사니 7천 원이 넘었다.
네덜란드가 꼭 먹어야 하는 요리가 있을 정도로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라서 뮌헨에서 남편과 약속한 대로(독일, 뮌헨 1편) 점심에 나가있을 땐 외식을 하되 저녁과 아침은 마트에서 장을 봐서 먹기로 정했다. 구경을 하다 보면 저녁이 늦어질 수 있는 걸 감안해서 점심은 최대한 넉넉하고 포만감이 오래가는 걸로 먹기로 했다.
이렇게 피곤했던 첫날의 일정은 식사에 대한 가족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