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의 꽃, '알바'를 시작하다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07

by 끼미

대만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아르바이트’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식당 서빙’ 알바를 하고 싶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중국어 초보인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대만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솔직하게 고하자면 이왕 알바할 거면 대만의 밀크티 가게나 현지 음식점에서 일해보고 싶긴 했었다. 하지만 나의 비루한 중국어 실력으로는 택도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일단 한식당부터 부딪혀 보기로 했던 것이다. 한식당 알바는 한 마디로 쫄보 중국어 초보가 선택한 ‘쉬운 길’이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알바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2021년 5월 대만 입국 후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식당 내부 취식이 금지되자 식당들이 셔터를 내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입국할 때만 해도 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이 있는 네이버 카페에 종종 올라오던 한식당 알바 구인글도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장님도 손가락 빨게 생긴 판국에 서빙 알바가 필요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다 진짜 '텅장'되는 건가 하고 걱정하던 참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어학당 개강 일주일을 앞두고 한식당 알바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었다. 평일 저녁 3시간, 어학당에서 가까운 위치, 식사도 제공한다는 그 한식당은 구글 맵 평가도 좋았다. 이왕이면 맛있는 한식을 파는 식당이면 좋지 않은가. 나도 거기서 밥을 먹을 거라면 더욱.


글에서 느껴지는 사장님의 쿨함도 좋았지만, 소심한 내가 망설임 없이 사장님 연락처로 라인(대만의 국민 메신저)을 보내게 만든 핵심 문장은 이거였다.


“당분간 포장이랑 배달만 해서 중국어 못 하셔도 돼요.”






설렘 3, 걱정 7이었던 첫 출근날. 구글 맵 리뷰를 하도 봐서 이미 익숙한 빨간 나무 문 앞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문에 붙은 종이에는 중국어로 뭐라 뭐라 적혀 있었는데, 대기 손님이 있으면 식사 시간을 제한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와, 내가 줄 서는 맛집에서 알바를 하다니! 종이 한 장에 설렘이 5로 올라갔다.


나머지 5를 차지하던 걱정도 출근한 지 10분 만에 사라졌다. 구인 글에는 포장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쁘게 플레이팅 하는 데 전혀 소질 없는 똥손은 그것마저도 걱정했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셨거니와 조금 덜 담거나 더 담는 건 괜찮다고 하셔서 마음이 편했다. 항상 등 뒤에 걱정 인형을 매달고 사는 사람에겐 ‘괜찮다’는 한 마디가 무거운 짐을 덜어줬다.


걱정이 물러난 자리에 ‘재미’라는 녀석이 밀고 들어왔다. 몇 달 동안 놀고먹기만 하다 오랜만에 노동이라는 걸 하니 신났다(한 달 뒤에 받을 월급 때문은 아니다). 살짝 과장을 보태자면 생기가 차오르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래서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이때 처음으로 했다. 물론 그 생각은 출근일이 늘어날수록 옅여지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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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알바 첫날 도시락 담는 법 알려주시던 사장님 / (우) 주문지에 메뉴명 쓰는 비법


그런데 첫 출근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구인 글을 보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가게 구석에서 조용히 포장‘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포장하러 온 손님과 배달 기사를 상대해야 했다. 즉, 중국어로 말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아무리 한식당이라도 여기는 대만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첫날부터 주어진 '중국어로 주문받기' 미션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주문받는 시스템도 혼돈에 일조했다. 김밥천국처럼 메뉴가 쫙 적힌 종이에 체크 표시를 하는 게 아니라, 빈 종이에 수기로 메뉴명을 받아 적어야 했던 것이다. 당연히 중국어로! 눈앞에 대만 사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되는데, 아직 중국어로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 메뉴명을 적는 건 타이베이역 앞에서 중국어로 랩을 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더욱이 이때는 어학당 수업을 하기 전이었다. 그러니까 ‘진짜 사람’과 중국어로 대화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말 그대로 ‘책으로만 공부했어요’ 수준이었다. 그러니 뭘 주문할 거냐고 묻는 목소리며 메뉴를 받아 적는 손이며 덜덜 떨리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아량 넓은 손님들은 초보 알바생의 뚝딱거림을 이해해 주었다. 메뉴판을 가지고 와서 친절하게 메뉴 이름을 보여주었고, 떨리는 손으로 메뉴를 적는 알바생을 기다려 주었다. 메뉴명과 마찬가지로 가격도 모르는 알바생 대신 총액이 얼마인지 알려주고 잔돈으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까지 계산해 주었다. 음식을 픽업하러 온 배달 기사들도 나의 버벅거리는 중국어를 찰떡 같이 알아듣고 대답해 주었다. 역시 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IMG_8105.JPG 첫 출근 기념으로 먹은 양꼬치와 맥주


혼돈 속에 끝난 첫 출근. 사장님께서 저녁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오전에 어학당 OT도 다녀와서 피곤했었던 초보 알바생은 곧장 집으로 왔다. 그리고 전날 사두었던 양꼬치와 아껴뒀던 맥주를 꺼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달큰한 양꼬치 한 입에 종일 긴장했던 몸이 풀렸다.


조촐한 자축 파티를 즐기다 식당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다시 봤다. 오뎅은 5개, 미역이랑 콩나물은 저만큼, 밥은 얇게 펴서 가득... 그리고 중국어가 적혀 있는 다음 사진. 저건 어떻게 읽더라...


나...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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