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어쨌든 이루어진 것

by 편린

학창 시절의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가 너무 싫어서 손을 놓아버린 쪽은 아니고,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던 쪽에 가까웠다. 대신 엉덩이가 무거웠다. 4시간 5시간이 넘도록 책상에 앉아있는 일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양보다는 질이 문제가 되었을까, 뭐랄까 공부하는 요령이 부족했던 아이였다.
그렇다고 높은 성적을 바란 적도 없었다. 딱 중간만큼만 하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힘이 들어서 시험 기간만 되면 나는 이유 없이 억울해졌다. 10대인 나에게는 마음이 무너지는 일.

가족들이 없는 시간에 혼자 성적표를 안고 거실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저녁이 돼서야 부모님께 쭈뼛쭈뼛 다가가 보여준 기억이 난다. 엄마는 늘 웃으며 넘겼다. 내가 지쳐 보였는지 다급하게 간식을 만들어 내 입에 넣어줄 뿐 별다른 말 없이 웃어 넘겨주었다. 시무룩한 딸이 안쓰러운 아빠는 조용히 다가와 부라보콘을 건넨다. 정말 맛있다며 나의 기분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비 내리는 시험지보다 딸이 기죽는 걸 더 보기 힘들어했다.

학교에서는 우리들의 장래희망을 꽤 자주 궁금해했다.
가끔은 가족환경과 각자의 성격, 건강상태도 같이. 문제를 해결하며 답을 찾는 것보다 차라리 나의 취미나 건강상태, 장래희망을 설명해 주는 일이 훨씬 명쾌한 공부가 되었다. 가장 뾰족한 연필로 글자 사이의 간격을 맞춰 또박또박 글씨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는 게 어린 나로서는 신나는 일이었다. 정성을 담아 눌러 적다 보면 정말 그런 어른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성적과는 별개로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물감 냄새와 가까이 살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흙냄새를 맡으며 도자기를 빚고 있지만. 어쨌든 같은 예술분야의 업을 갖게 되었으니 거의 꿈을 이룬 거나 마찬가지다.

20대의 끝에 있다. 지금 하는 일 말고도 끊임없이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고 있다. 책이 좋아 글을 쓰고, 명상이 좋아 운동을 한다. 손글씨를 쓰는 것, 바깥에 나가 자연을 사진에 담는 것도 좋다. 아예 직업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여러 개의 문을 열어두는 마음은 언제나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주 희미한 빛이 세어 들어올 만큼이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뭐라도 희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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