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죽음 앞에
우리는 죽음을 많이 보았다. 공원묘지나 봉안당에서. 부모, 친지 등의 임종과 장례를 치르면서. 업무상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수발하면서. 그래서 알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지. 사람의 목숨이 어떤 모습으로 멈춰 서는지.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평등하게 다가온다. 재산, 권력, 명예, 노력 어떤 것도 달려드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심장마비가 미리 경고하고 오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사전에 통보될 리 없다. 세월호 사고나 무안 항공 비행기 참사를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오늘 내가 잠들었는데 내일이 없다면? 뜻밖에 내가 죽음과 만난 것이다. 이것은 진리요, 현실이다. 죽음은 그렇게 내 가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자기의 죽음을 간과한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 무슨 절차가 있는지, 어떻게 내 영혼과 정신이 육체에서 분리하는지, 내 정신과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터부시 하는 문화 영향도 있다. 하여 내 죽음이 남의 일처럼 멀리 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을.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예수처럼 부활하는 것을. 심판이 있지만 그것은 오직 예수 보혈의 옷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로 판정되는 것을. 그 후엔 눈부시고 황홀한 영원한 삶이 이어지는 것을.
그것을 위해 예수가 신의 자리를 떠나 사람이 된 것을. 예수가 직접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하여, 인류의 죽음 이후 삶을 준비한 것을. 다만 죽음이 낯선 것은 처음 경험 때문일 뿐이라는 것을.
세상의 어떤 사람이 인류의 숙적 죽음과 맞서 싸워 이겼는가! 세상의 어떤 사랑이 희생제물이 되어 죽음을 깨뜨리고, 죽음 이후의 삶을 마련하였는가! 우주의 어느 신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의 죽음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었는가!
미국의 철학자요, 정신의학과 교수인 레이먼드 무디(1944~ ) 박사는 죽음을 연구한 최초의 학자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 150명의 사례를 모아, 《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배효진 옮김. 서스테인, 1975/2024)이라는 책을 엮었다. 사례의 주인공들은 여러 다른 상황에서 죽음을 경험했는데, 거의 비슷한 것을 이야기했다. 하여 그는 같은 책 서문에서 자신 있게 밝힌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 곧 혹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슬퍼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죽은 너머에는 이 세상 그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더없이 찬란하고 눈부신 삶이 있다고.
반면, 미국 심장전문의요, 한때 대통령의 주치의요, 심폐소생술의 대가인 모리스 롤링스(미국, 1922~2010) 박사는 죽음의 문턱 너머에 있는 '고통스러운 광경'을 본 사람들의 사례를 덧붙였다. (《사후의 세계》(김국진 옮김. 보이스사, 1978/1990),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이주엽 역. 요단, 1995).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지옥의 불꽃 속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치는 한 남자를 심폐 소생시키면서 죽음 후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어떤 경전에서도 만날 수 없었으나, 죽음 후의 세계를 정교하게 말하는 성서를 발견했다. 그 후 그는 심폐 소생 후 되살아난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현대의학 '심폐소생술'은 인류에게 육체의 생명을 되돌려 주기도 하지만,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도 하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예수의 제자 바울이 이미 2천 년 전에 경험한 죽음에 관한 말을 들어보자.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후(행 14:19), 낙원으로 이끌려갔다. 거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고후 12:1~4)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당신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시고 황홀한 죽음일까? 구원자 예수가 마련한 보혈의 옷을 미처 입지 못해, 무섭고 두려운 죽음일까? 구명조끼가 당신의 발아래 놓여 있다. 죽음이 이르기 전에 들어 입으라! 이토록 쉬운 일을 거부한다면, 당신은 죽음 앞에 영원히 떨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