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서 인간이라고 하지요
잘나지 않은 순간을 가치 있게
20살 연기과에 다니고 있을 때라 강의가 끝난 후 연습을 많이 해야 했지만 이제 막 입학한 나는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집에 가거나 동기들과 어울려서 술을 먹기 바빴다. 그렇게 하루를 매일 사람들과 붙어있다 보니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가지만 정작 쌓아둔 하루하루가 없다 보니 이마저도 허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적응을 어느 정도 마친 동기들은 점차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하고, 나도 무리를 만들어 다녔지만 늘 그렇듯 목소리 크고 재롱을 잘 부리는 애는 금방 보여 줄 장점이 다 소진되어서 시시한 그런 아이가 되어 버린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늘 즐거웠다.
하하 호호 뭐가 그리 좋은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강의 사이 비는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그래도 중간에 비어버리는 시간이 생기면 과자, 젤리, 초콜릿 등등 먹을 것들로 입을 쉬지 않았다.
매일 가득 차 있던 입이 비어버려서 그런 걸까 강의가 끝나고 하교를 하는 시간에 석양이 지는 모습만 봐도 괜스레 뭉클해지고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cc가 생기기도 하고, 이제는 서로 썸도 타지만 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그냥 내 마음에 들어오는 선배들을 짝사랑할 뿐 별다른 섬싱조차 없던 나는 학교가 종종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공연연습에 박차를 가하며 해야 할 일을 몰두할 뿐이었다.
학과에서 학회장을 뽑는 일이 있었다.
사실 학회장은 보통 남자를 선발하지만 나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생활에 충실해서 그런지 학회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학과 성적이 좋아서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공부도 잘하는 애가 일도 잘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서 그런지 나는 대학교계의 정치판인 학회장 역할을 맡아버렸다.
똥물, 교수님들의 은근한 압력과 동기들의 출석관리, 선배들의 요구사항 맞추기, 공연 기획 및 예산 회의, 대의원회의 등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대외 활동으로 만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넓고 크다는 것도 많이 배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잘 살아야지 하는 동기부여보다는 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으로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남에게 욕먹는 것은 일상이었으며, 욕을 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피해망상적 생각과 불안한 마음을 술과 이성교제로 채우던 나날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회의보단 싸움이 되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연극치료를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본 외부강사님의 모습에 처음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늘 어렵게 느껴지던 안톤체홉의 이야기가 아닌 아기돼지 삼 형제를 연극으로 진행한다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나만의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만들어서 공연을 하였고, 형식도 대사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에 나만의 대사를 첨가하며 말하자 속이 시원했다.
첫째 돼지는 늑대에게 무서움을 느꼈다. 하지만 엶히 벗어나려고 새로운 형제들의 집으로 향했다. 늑대는 여러 수단과 방법으로 집을 부수어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순간에도 나는 차라리 늑대에게 잡아 먹힐지언정 집을 지키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집’은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었다.
늘 밖에 나가 놀고 싶어서 뿌리치고 나갔지만 지쳤을 때 돌아오는 공간은 집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워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며 큰소리를 치고 나가도 언젠가는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키던 곳도 집이었다.
술에 취해서 누워있던 아빠 옆을 지키며 나를 구원해 줄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 곳도 집이었다.
결국에 나는 가장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한 그곳은 집이었다.
나에게 집을 왜 그렇게 열심히 지키냐던 치료사의 질문에 눈물이 하염없이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연극치료는 뭐냐고 물으며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끝없이 물어보며 처음 본 사람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었던 것 같다.
전문대에서 2년의 공부를 마치고 나를 울린 치료법을 배우고 싶어서 그리고 나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에 상담학과에 편입을 하자는 마음을 먹고 졸업과 동시에 새롭게 입학을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혐오와 연민, 열심히 살아온 이유를 알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시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없는 돈을 써가며 상담을 받는 동시에 상담을 공부하는 오염된 수검자가 되기도 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던 나지만 스스로를 인정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그런 나를 울렸던 사람들을 단순히 나쁘다고 평가했던 과거의 그들을 새롭게 이해하기로 했다. 그들의 삶도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잘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연민과 함께 이제는 사랑해주지 못했던 나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치유하기로 했다.
조금은 까져도 매력적인 내 모습을 찾고자 발광하는 20대 초반 다운 삶을 살아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