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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l 18. 2024

불안 혹은 욕망

내 삶에서 아파트는 #17

아파트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인정이 되는데, 내가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을 품으면 진짜 가질 수 없을 거 같아 불안하다. 꼭 아파트가 아니어도, 집은 하나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마치 이룰 수 없는 기대인 것만 같다. 서울에 산 지는 25년 됐고, 결혼하고부터는 13년쯤 됐는데, 요즘엔 '서울에서 너무 오래 버텼나' 자괴감이 든다.


아파트값이 주식 같으면, 값이 오르다가도 떨어질 때 사거나 저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면 될 텐데, 아파트는 그러기도 힘들고 돈의 단위부터가 달라서 매수금액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구입하는 걸까. 최근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이 몇 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는 뉴스를 보며 든 생각이다. 아파트가 떨어지기는 할까. 나 같은 '부린이'(부동산 어린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아파트가 떨어질 거라는 기대를 갖는 거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순진한 생각이겠지만, 다만 소망한다. 내가 가진 연간 소득의 몇 배 정도면 나름 괜찮은 집 하나 매입할 수 있고, 아파트값도 소득의 증가 속도만큼만 오르면 좋겠다.


그저께 밤에도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바로 끄지 못했다. 부동산 앱에 들어가서, 내가 가진 돈에서 갈 수 있는 곳을 검색해 본다. '여기에서 이건 매입할 수 있겠다, 좀 보태면 세 식구 잘 살 수 있겠는데? 서울에서 벗어나도 가격이 쉽지는 않네.' 한탄한다. 몇억도 모자라, 십몇억 하는 아파트를 보고 있자니, 나는 패잔병이 된 것이 분명하다. 아파트 불안증 앞에 서면, 나는 더 쪼그라드는 거 같다. 어떤 면에서는 뭐 지금까지 살아왔던 로 어떻게 잘 되겠지, 막연한 긍정도 품는다. 될 대로 되라지.


뉴스는 불안감을 더 부추긴다. 몇 년 전에도 그랬고, 요새도 그런다. 아파트값이 다시 오르니, 빨리 사야 한다고. 지금 안 사면 또 '벼락거지' 된다고. 반복되는 레퍼토리지만, 애써 무시하기엔 너무 자극적인 말이다. 또, 벼락거지?


몇 년 전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칠 때, 많은 사람이 영끌로 아파트를 샀다. 가진 돈의 범위 내에서 사거나 부모 도움으로 산 사람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이 모은 돈 조금에 담보대출, 신용대출, 카드론, 부모 찬스 같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산 사람들이다. 가능한 일인지, 나는 해본 적 없어서 실감이 안 난다. 예를 들어, 10억짜리 아파트 자체를 살 생각도 못했을뿐더러, 만약 3억을 갖고 있다면 4억은 담보대출, 2억은 신용대출, 1억은 부모님 대출이란 말인가. 10억 중 7억을 빚내서 사는 게 말이 되나. 혹자는 이게 레버리지 방식이라고 따옴표 붙인다. 부채도 자산이라는 말은 여전히 이해는 잘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돈 3억에 1억을 대출받고 6억 전세를 놓으면 10억이 채워지기도 한다. 갭투자라고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집을 산다고? 바보야, 그러니까 네가 돈을 못 번다. 10억짜리 집이 15억이 되잖아. 누군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거 같다. 집값이 오를 때, 불안하니까 집을 산다. 누군가는 그들의 불안감을 부추겨서 집을 사게 만든다. 세상의 진실이 뭔지는 아직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그 불안을 일정 부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선택이다.



오화진作 <이기주어(魚)> 21×29cm 종이 위에 드로잉, 페인팅 2019 (<욕망해도 괜찮아>展 중)


불안은 욕망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불안하니까 매입하는 것이지만, 욕망하니까 매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파트값이 떨어진다고 하면 굳이 사지 않았을 거다. 올라간다고 하니까, 무리해서라도 사는 거다. 조금 노력하고 가격에 올라타면 몇천만 원, 몇억은 벌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할쏘냐. 돈 버는 방법 아닌가. 그것도 내 노력이 있으니 버는 거다. 노력 안 하는 사람은 못 번다.


욕망은 노력의 원천이고, 돈 버는 원동력이다. 불법이 아닌 바에야, 하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다. 각자의 판단이다. 다만, 개인의 합리적 선택들이 사회적으로 꼭 긍정적인 결과로 도출되는 것만은 아니다. 집값이 오르니까 개인들이 집을 산다. 계속 산다. 집값은 계속 오른다. 집값이 계속 오르니까 주거비용이 올라간다. 집을 매입할 수 있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돈 버는 사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주거불안정이 높아진다. 저출생률 같은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악순환 된다. 아이로니컬 한 현상이다.




나라고 욕망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큰 욕망까지는 아니고, 세 식구 살 만한 집 한 채는 이제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희망사항이다. 10년 넘게 산 지금 우리 동네에서 계속 살기를 바랐지만, 너무 많이 오른 아파트값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허하다. 오래 버텼다. 우리 동네에서 더 버티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어렴풋이 생각든다. 어렴풋한 생각은 직관이고, 직관은 많은 사실을 반영한다.


서울의 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자영업도 어렵다고 하고 경제도 어렵다고 하고 전반적인 소득도 크게 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 어떤 맥락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어느 곳이 우리 세 식구를 받아줄까. 나의 경제적 능력을 많이 벗어나지 않는 곳의 적당한 아파트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상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된다. 불안과 욕망의 어디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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