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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n 21. 2024

결국 다시 아프게 될 사랑

[잡담술집] 23화

그녀는 잔을 양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두 번째 연애가 끝나고 나니 이젠 어른스러운 연애가 하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한 어른스러운 연애는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행복을 누리는 거예요. 헤어지게 되더라도 힘들지 않을 만큼만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거."

"아무래도 전 연애의 이별이 힘들었으니까요."

"하하, 맞아요."

그녀는 상체를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에 체중을 실었다. 반쯤 벗겨진 그녀의 신발은 발가락에 걸려 달랑이고 있었다.


"저의 마지막 연애 상대는 기타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며 최선을 다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잘해 줬어요."

그는 잔에 담긴 위스키가 잔잔하게 출렁이는 것을 보며 말했다.

"해론이 말한 어른스러운 연애였군요."

"맞아요. 서로를 존중한다는 명목 하에 헤어져도 힘들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는 관계. 그런 연애를 하게 된 거죠."

그녀는 검지에 묻은 설탕을 엄지로 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연애는 어른스러운 게 아닌 계산하는 관계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동시에 제 자신의 모습이 선배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죠. 상처받지 않으면서 연애하고 싶다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한 거였으니까요."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의자등받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 상대방도 저와 다를 건 없었어요. 만나는 날, 만나는 위치, 전화하는 시간마저도 모두 정하고 그 밖의 범주에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죠. 필수적인 요소만 충족시키는 관계. 그저 우리는 서로를 이용한 관계였던 거였어요."

"둘은 애인행세를 할 상대가 필요했던 거군요."

물지도 않은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숨엔 뿌연 연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죠."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어른스러운 연애'라는 건 뭘까요?"


그녀는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고 턱을 괴었다. 뒤로 넘겨졌던 머리이 다시 앞으로 넘어와 그녀의 볼을 가렸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어른스러운 연애''계산하는 관계'와 착각했던 걸 보면 두 개의 성질은 비슷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두 의 공통점은 감정을 절제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이라기보다는 듣고 있다는 표현 같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결국 다시 아프게 되더라도 어린아이 같은 연애를 해야 하나 봐요. 저는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감정을 절제할 수가 없거든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턱을 괸 채 천장 너머의 허공을 고 있었다. 혼잣말하듯 그녀는 중얼거렸다.

"어린아이 같은 사랑을 하면 다시 아프게 될 텐데, 사랑을 하려면 결국 아픔을 배제할 수 없나 봐요."

그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프지 않을 사랑도 분명 있을 거라 믿어요."

그는 마지막 남은 과자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감정을 절제하지 않아도, 뜨거운 마음을 온전히 쏟아내도, 분명 아프지 않을 사랑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저 내 사랑을 함께 해줄 상대방을 만나면 되죠. 서로의 배려와 사랑을 알아줄 그런 사람이요. 그러면 아픔 없이 사랑으로 가득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 상대 만났으면 좋겠네요."

"분명 있을 거예요."

그는 빈 접시를 흔들며 말했다.

"안주도 떨어진 김에 바람이나 쐬러 갈까요?"

그녀는 기름진 손가락을 냅킨으로 닦았다.

"좋죠."



[잡술집] 시즌 1이 끝났습니다.

휴재 없이 시즌 2로 돌아오겠습니다.

총 33화 완결입니다.


늘 봐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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