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노신사
민준은 잠에서 깨어 엄마의 빈자리를 확인하고는
엄마 잃은 아기새처럼 울었다. 경찰이 오고 민준을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민준은 다음날 미국에서 오신 엄마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민준입니다. 교수님"
은발의 젊은 할아버지가 민준이와 눈을 맞추려고
무릎을 구부렸다. 한참 동안이나 민준이를 바라보고
있던 노 신사가 눈물을 참는 얼굴로 안심시켰다.
"네가 민준이구나. 할아버지다. 미안하구나. 이제야
너를 보러 오게 됐구나."
"민준아, 할머니야.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엄마는 아기 천사들을 돌보러 하늘나라에 먼저 갔어.
그러니까 민준이는 엄마 걱정 하지 말고 할머니랑
미국에 가는 거야."
민준이는 어렴풋하게 엄마를 다시 못 보게 될 것이라 걸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민준일
보기만 하면 눈물을 흘렸다.
조부모를 따라 미국에 갔던 민준은 현수가 그랬던 것
처럼,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었다.
이번 주는 엄마의 기일이었다.
기일에는 성당에서 영면하신 엄마의 평안을 비는 미사를 올렸다. 그리고 그 주에는 할아버지랑 묘소에
갔다.
"Granny good Morning! 그곳 날씨는 어때요?"
"민준이구나. 아직 장마가 오기 전이라 햇볕은 엄청
따가운데, 바람은 상쾌하구나.
민준아, 할머니가 얘기한 데로 시간 좀 내봐."
민준의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민준은 유품이었던 묵주를 만지작 거렸다. 한국에서 엄마랑
살았던 흑석동 원룸이 생각났다.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이 흐릿 하지만 엄마랑 추운 밤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었던 단 팥이 많이 들어가서 맛있었던
찐빵은 잊을 수가 없었다.
"네. 알겠어요. 이번 달 엄마 기일에는 할머니도
용인에 오실 건 가요?"
"민준아, 매년 할아버지랑 추모 공원에 가니까 이번에도
할아버지랑 둘이 다녀와."
"네. 할머니."
민준이는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그의 조부모도 미국 생활을 마감하시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민준은 엄마와 증조모가 살았던
지리산에도 가보았다. 민준의 기억 속에 해인은 작은 점처럼 존재했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민준은 독립했다.
할머니는 민준이 독립하기 전 날 엄마의 일기장을
건네주면서 아버지의 얘기를 꺼냈다. 일기장은
블랙 다이어리 수첩이었다.
"민준아,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나 궁금했지?
엄마가 일기장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적어두었으니까 읽어봐."
민준은 재빠르게 일기장을 넘겼다.
강현수, 서희대 본과 2학년. 지리산으로 의료 봉사 온 의대생.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암 치료를 안 해도 되겠다고 완치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할머니께서는 너무 좋아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간 치료를 받으면서 고생했던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현수 샘이 오늘 밤 왜 이리도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아 민준은
민망했다.
'당시 서희대 본과 2학년 지금은 배테랑 의사가 되셨을 거다.
아버지를 찾으려면 서희대로 방문
해야 한다. 그전에 졸업생 명단을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 의사 협회에 속해 있으니까 그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민준은 노트북을 켜고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의사로 등록되어 있는 분들이 검색되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강현수 '라는 이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