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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선생의 이중생활

by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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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4학년 2학기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임용 합격한 나에게는 학생으로서 맞는 마지막 겨울방학이었다. 자취방에 있던 몇 안 되는 짐을 박스에 넣어 택배로 부쳤다. 월세 생활을 끝내고 도착한 우리 집은 아늑했다. 대학교 입학하고 기숙사로 떠난 그날부터 이방인처럼 마음 둘 곳 없이 살던 나였다. 드디어 몸도 마음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었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캐럴 소리를 듣자니 마음이 덩달아 들떴다. 고향 친구들과 만나 가볍게 술 한 잔 할까. 야경이라도 보러 떠날까. 과외해서 모아 놓은 돈을 어떻게 쓰면 발령받기 전 마지막 겨울방학을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방학 첫날을 보냈다.


“혜진아, 혜진아!”

방학 둘째 날, 늦잠을 자던 나는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뭔가 큰일이 난 것이 분명했다.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 봤더니 할머니가 바닥에 쓰러져 겨우 내 이름을 부르고 계셨다.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 계시던 할머니의 다리가 어딘지 이상했다. 몸은 앞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 다리가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잠이 번쩍 깼다. 머리끝에 짜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자꾸만 떨려 버튼을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몇 번 빗나가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꼭 움켜잡고 심호흡을 했다. 겨우 버튼을 눌렀다. 1. 1. 9. 골목 안 전셋집을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설명하다가 포기하고 잠옷 위에 빨간 코트 하나를 대충 두른 채 큰길까지 나가 구급차를 기다렸다.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예고도 없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 아빠가 그날따라 원망스러웠다. 이사한 집엔 이제 겨우 몇 번 와 본 터라 주소도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주소만 알고 있었다면 구급차가 조금 더 빨리 도착했을 텐데.

기숙사로 떠난 나와 군대에서 복무하는 동생. 아빠는 집 평수를 줄여 이사하셨다. 우리가 살던 집을 전세 내주고 마당 하나를 여럿이서 같이 쓰는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대문 옆 공동 화장실을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집이었다.

다리가 성치 않으신 할머니가 싱크대 아래로 새어 나온 물을 밟고 미끄러지셨다. 골다공증을 앓던 할머니의 다리가 힘없이 휙 돌아가면서 부러졌다. 의사는 X-레이 사진을 보며 할머니의 허벅지 뼈가 고관절 옆에서 무릎 부근까지 대각선으로 길게 골절되었다고 했다. 천식이 있던 할머니는 겨우 수술 일정을 잡았다. 전신마취는 폐에 무리를 줄 수 있어 하반신 마취만 하고 다리에 핀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 그때부터 할머니와 나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겨울방학을 즐기리라 설레던 고민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났다.

병실에는 6개의 침대가 있었고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이 생활했다. 환자 한 명당 간병인 한 명, 나는 할머니 간병인으로 꼬박 5개월을 그 병실에서 보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을 사용할 일은 없으니 병실에 딸린 화장실도 따로 없었다. 간병인들은 모두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가서 환자들의 대소변 통을 처리해야 했다. 내가 할머니 대소변을 받아 들고 병실 복도를 지나 화장실까지 오갈 때면, 모두 나를 기특하다, 착하다 하셨다. 그 칭찬과 눈길이 싫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자는 불편함보다, 아무 데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아 짜증 났다.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하는 간병이 아니었다. 할머니를 보살필 사람이 없으니 마지못해 병원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게 학생으로서는 마지막 방학이었다. 나도 내 손으로 돈을 벌면 지긋지긋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다 망쳐 버렸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가 참 많이도 미웠다. 이런 시커먼 속마음을 숨기고 있자니, 사람들의 착하다는 평이 불편할 수밖에.

임용에 합격하면, 발령받으면, 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을 테고, 학생들에게, 학부모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행복한 꿈도 꾸고 있었다. 발령받기 전까지 어떤 교사가 될지 고민해 보고 어떤 학급을 경영하게 될지 계획도 세워 보리라는 나의 기대들은 생존을 위해 뒤로 미뤄두어야 했다. 할머니의 병원비가 걱정이었고, 그나마 모아 놓았던 돈도 할머니 병원비에 보탤 수밖에 없었다. 교직에 도움이 되는 책, 교사라는 직분에 어울리는 단정한 옷 몇 벌과 구두 한 켤레, 화장품 몇 개를 사려고 했던 나의 소소한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지 몇 달이 지나자 나는 할머니가 살아계신 기적을 잊고 신에게 원망을 쏟아 냈다. 열심히 살았는데 잘했다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자꾸 내 머리 위에만 비바람, 천둥, 번개, 우박까지 쏟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그 고약한 신이 밉고 또 미웠다. 한숨 쉬는 날이 많았다. 그냥 딱 죽고 싶었다. 깜깜한 나날을 겨우 버티며 지냈다.

3월, 발령받기 전까지, 나는 5분 대기조로 24시간 할머니 곁을 지켜야만 했다. 잠시 바깥에 나가 친구와 전화라도 한 통 하고 올 때면 요실금에 시달리는 할머니가 소변 마려운데 자리를 비운다고 원망 섞인 말을 쏟아 내셨다. 침대에 누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오죽하면 그런 소리를 했을까.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만큼 할머니가 회복하셔서 다행이었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었는데, 잔소리를 듣자니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잠이 부족해 예민해질 땐 어김없이 할머니를 원망하는 시커먼 마음이 솟았다.


멀리 있는 것만 같았던 봄은 그해도 어김없이 다가왔다. 3월 2일 아침, 보호자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했다. 베이비 로션을 대충 얼굴에 비비고 임용 면접을 볼 때 입었던 정장을 입고 학교로 갔다. 간병인에게 할머니를 부탁하고 바깥공기를 쐬니 좀 살 것 같았다. 신규 교사는 꿈도 못 꾼다는 3학년을 맡게 되었다. 퇴근 후 병원에서 간병하고 일어나 출근하는 나의 상황을 학교에서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창문도 없는 병실에서 보낸 지옥 같은 2개월. 나는 아침이면 알코올 냄새나는 병실에서 빠져나와 10살짜리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로 향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 눈이 퀭하고 피곤했지만, 출근하는 길이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아침마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학교는 나의 피난처였고 충전소였다. 병원에서는 보호자였지만, 학교에서는 사랑받는 선생님, 예쁨 받는 막내였다.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치면 뿌듯했다. 병원에서 밤새 간병하며 힘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진심을 담아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쳤다. 병원에서 출근하고 병원으로 퇴근하는 3학년 2반 강 선생의 이중생활. 나의 이중생활은 벚꽃이 지고 산이 짙푸른 색이 될 때까지 계속됐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가 대문 옆 화장실을 이용하기 불편할 거라며 동생은 할머니 퇴원 시기에 맞추어 작은 아파트를 하나 마련했다. 할머니는 퇴원해 집으로 온 후에도 여전히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셨다. 나는 일하면서도 할머니를 보살펴야 했고 집안일도 손 놓을 수 없었다. 넉넉지 않은 월급을 받아 생활비와 병원비, 약값으로 보태느라 통장 잔고는 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이 고개만 넘으면 숨이 좀 쉬어지겠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저 모퉁이만 돌면 평탄한 길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가 생기는 때. 그런데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이 예상 밖의 더 가파른 언덕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사소한 것에도 지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원망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가끔 떠올린다. 병원과 집만 오가던 나에게 학교는 꽃향기 가득한 곳이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새소리 같았다. 해가 뜨면 학교로 도망치듯 나와 숨을 쉬고, 아이들에게서 심폐소생이라도 받듯 하루를 견뎠다. 말썽 부리는 아이도, 말 잘 듣는 아이도 다 예뻤다. 실수해도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선배들이 고마웠다. 그들이 나의 숨구멍이었다. 퇴근 후 집안일과 간병으로 날이 서 있던 마음도, 학교로 출근하면 다시 둥글어졌다. 덕분에 또 하루를 건너갈 힘을 얻었다. 돌아보면, 그렇게 나는 학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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