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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진답게

by 강혜진

고향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었다. 만나자는 말에 입고 있던 옷 위로 모자를 푹 눌러썼다. 휴대폰만 대충 챙기고 슬리퍼를 신은 채 엘리베이터 버튼부터 눌렀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사회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날 때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교양, 적절한 예의와 품격을 갖추려면 머리단장도, 옷 고르는 일도 신경이 쓰인다.

고향 친구는 나를 너무 잘 아니까, 굳이 꾸밀 필요가 없다.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이라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라도 거리낌이 없다. 초·중·고를 함께 다니며 집안 사정까지 훤히 아는 친구들. 시댁 이야기든 남편 이야기든, 어떤 말을 꺼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자매 같은 친구다. 술 한 잔 없이도 맨 정신에 취한 듯 떠들고 웃을 수 있다.

가끔 심술부리는 82년생 개띠 남편 이야기를 하며 “개자식, 짜증 난다.” 하고 스스럼없이 내뱉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짐짓 놀란다.

‘강혜진답지 않다’며 웃어넘기는 친구들, 그러다가도 “속 시원하네.” 하고 같이 웃어준다. 속내까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강혜진답지 않다’는 말. 그 말이 내 안 어딘가를 두드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데, 나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겨우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흰 종이 가운데 ‘강혜진’이라 써 놓고 나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엄마, 교사, 초보 작가. 명사는 명확히 찾을 수 있는데 많고 많은 형용사 중에 나를 딱 맞게 설명하는 형용사를 고르기가 애매하다.

내 속에는 ‘착한’과 ‘못된’이 공존한다. ‘성실’과 ‘게으름’이 팽팽하게 밀당을 한다. ‘당당한’과 ‘머뭇거리는’이 번갈아 힘을 낸다. 이랬다 저랬다 할 때가 많다. 그러고 보니 나는 주관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내 중심은 없고 주변 상황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다 보니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한다. 이 사람이 이런 것도, 저 사람이 저런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한 단어가 떠올랐다. ‘회색 인간’. 완전한 흑도, 완전한 백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 상황에 따라 흑에 가까워지기도, 백에 가까워지기도 하는 사람. 그 경계에 서서 두 색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사람. 쨍한 비비드 컬러부터 파스텔 톤까지 두루 어울리는 사람. 그 애매함이 약점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강점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세상 어느 것과도 관계 맺기 편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줏대 없음이 반갑고 팔랑거리는 귀가, 지나치리만큼 깊이 빠져드는 공감력이 다행스러운 것들이다.

나는 ‘혼자만 잘 되려 하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둔 적이 없다. 내가 내 것을 챙기는 것에는 도무지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에게 겉으로 웃어 보이지만 속으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살다 보니 깨닫는 것이 있다. 제 것 스스로 챙기는 것도 어렵다는 것 말이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제 몫 챙겨가며 사는 것이 모든 인간의 인생 목표가 아닌가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제 몫을 스스로 챙긴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을 지탱하는 것, 그게 어쩌면 모든 인간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제 주머니를 어느 정도 채워 놔야 남에게 나누어 줄 여유가 생긴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혼자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제 앞가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채워야 할 주머니가 작았던 게 분명하다. 내 주머니가 기도 전에 나누어 주기 바쁘다. 사주에도 나와 있단다. 나누어 줄 것이 있으면 다 퍼주는 사람이니 조금이라도 모아두고 싶다면 담보 대출을 받아 갚는 게 거지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욕심 없는 것 같은 내가 그나마 욕심나는 건 누군가를 돕는 것이다. 나에게 해코지한 아이에겐 큰 소리 한 번 친 적이 없으면서, 내 친구 괴롭힌 아이에겐 정의롭게 따질 용기가 나곤 했다. 타인을 돕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데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모르는 척하기가 더 힘들었다. 내 관심사는 온통 어려움을 겪는 이웃, 힘들어하는 사람, 슬퍼 보이는 누군가를 향해 있다. 물질적인 도움은 아닐지언정, 그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힘을 보태고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주머니를 채우듯 나 자신의 힘든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해 주는 힘도 길러가고 있다. 가끔은 시원하게 쌍욕도 내뱉을 줄 안다. 어디까지나 갈등 유발용이 아니라 자기 위로용 소심한 욕이라고 나를 대변해 본다. 조금 과격해 보이긴 하지만 내 마음을 챙기며 내가 당당해지는 과정 중 하나라 여기고 있다.

‘강혜진답다’는 말을 사전처럼 명확하게 정의 내려 보려 한다.

강혜진답다

형용사 개자식부터 현자까지 두루 친구를 맺을 수 있을 만큼 이해의 폭이 넓다.

형용사 힘든 것을 보고 모른척하지 않으며 타인을 돕는 데 깊은 보람을 느낀다.

형용사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토닥일 줄 알며 가끔은 시원하게 자기 위로용 비속어를 구사한다.

형용사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조건 괜찮다고 여기는 긍정 패치를 장착하고 있다.

유의어 관대하다, 긍정적이다, 이타적이다, 당당하다, 자신감 넘치다, 자유롭다

나다운 것에 대한 정의를 내가 정리하다 보니 지극히 주관적이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쏙 뺐다. 유의어도 좋은 단어들만 골라 넣었다. 40년 동안 이렇게 살지 못했으니 남은 인생은 오롯이 이렇게 살고 싶다는 사심을 듬뿍 담았다.

남의 눈에 비치는 강혜진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당당한,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빈 주머니를 들고 남에게 나눠 주느라 내 몫을 챙기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도 아직 사랑이 남아서 흔쾌히 나누어줄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어지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국어사전이 우리말의 변화와 발전을 반영하기 위해 개정을 거듭하는 것처럼 나도 살아가며 ‘강혜진답다’에 새로운 유의어를 추가하고, 기존 의미를 수정해 가려한다. 트렌드를 반영해 자아를 유연하게 변신시키고 점차 더 나은 단어로 나를 수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10년 후, 20년 후, 나는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조금 더 자유로우며 주변에 은은한 영향력을 풍기는 사람이 되어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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