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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설거지 안 해

by 강혜진

불안한 시절이 있었다. 생전 그런 적 없었던 아빠는 술에 취해 분노를 토해냈고 집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환갑이 넘은 할머니는 졸지에 집 나간 며느리의 시어머니이자 홀로 된 아들과 어미 없는 손자 손녀를 거두어야만 하는 기구한 신세가 되셨다.

나와 동생이 너무 예뻐서, 혼을 내다가도 깔깔 웃어버리던 할머니는 그때부터 웃음을 잃으셨다. 몸이 편찮으시던 할머니가 마음의 병까지 얻은 것 같았다. 엎드려서 중얼중얼 읽던 성경책도 펼치지 않으셨고 묵주반지 돌리며 기도하는 것도 멈추셨다. 할머니 한숨 소리는 깊어져 갔고 가끔은 소주 세 잔에 눈물바람으로 술주정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밥때가 되면 늦지 않게 식사 준비를 하던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저녁 시간이 되어도 밥 해야 한다며 걱정만 했지 일어나 움직이질 못하셨다. 밥 안쳐라, 국 솥에 불 올려라, 가만히 누워서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르며 여자는 이런 걸 잘 배워둬야 한다고만 하셨다.

엄마는 결혼해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부엌을 수리하고 화장실에 양변기와 욕조를 들여놨다. 신발을 신고 나가서 연탄에 불을 때고, 쪼그려 앉아 음식을 준비해야 했던 부엌이 입식 부엌으로 바뀐 것은 내가 열 살 때였다. 시집올 때 가져왔다던 엄마의 냉장고는 내가 열한 살 되던 해, 주인도 없이 덩그러니 남았다. 엄마가 없는 부엌에서도 여전히 ‘웅’ 울리는 소리를 내며 엄마가 고른 까만색 싱크대 옆에 서 있었다.

종일 누워서 요란한 마음을 달래던 할머니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는 몸을 일으켜 설거지를 하셨다. 쌀 씻는 대야에 그릇을 푹 담가 놨다가 설거지를 하셨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설거지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귀한 물을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꼈다고 하셨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데도 할머니는 옛 스타일을 고집하셨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신세한탄을 늘어놓으셨다.

“육십 평생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내 팔자도 참 기구하지, 며느리 보면 설거지는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손자 밥그릇까지 설거지해야 하나.”

여자는 밥 먹고 나서 엉덩이 무겁게 앉아 있으면 못 쓴다며 동생 말고 나에게만 설거지를 시키던 할머니가 미웠다. 뽀득하게 설거지한 그릇을 엎어놓으면 잘했다 칭찬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싱크대에 물을 다 튀어놨다고, 콸콸 물 아까운 줄도 모르고 설거지를 한다고 지적을 하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내 얼굴에서 집 나간 며느리의 얼굴을 읽으면서 미움을 느끼고, 동시에 죄책감과 짠함을 느끼던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설거지통 앞에서 서슬 퍼런 한탄으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나도 설거지가 싫어졌다. 설거지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면 나도 패배자가 된 것처럼, 팔자가 기구해진 사람이 된 것처럼 비참해졌다. 내가 설거지를 싫어하게 된 건 순전히 할머니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알콩달콩한 신혼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청첩장을 가지고 찾아갔을 때, 선생님은 빨간색, 초록색 앞치마 한 쌍을 선물하며 언젠가 나와 내 남편이 나란히 앞치마를 입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편지까지 써 주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 때문에 정신 못 차리는 남편은 단 한 번도 그 앞치마를 입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시동생들까지 신혼집에 들어와 살게 되다 보니 설거지통 앞에 설 때마다 나는 할머니처럼 신세 한탄을 해대기 시작했다.

설거지는, 밥 먹고 엉덩이 무겁게 앉아만 있으면 안 된다는 할머니의 말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루고 미루다 하루의 가장 마지막으로 처리하는 일이 되어 종일 나를 짓눌렀다. 싱크대에 설거지할 접시가 쌓여있으면 숙제 미뤄 놓은 아이처럼 가슴 한편이 묵직했다. 설거지에 대한 거부감은 급기야 짜증으로, 원망으로, 분노로, 가끔은 부부싸움의 시발점으로 그 기세를 불려 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응당 그에 알맞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데 돈 나올 구석이 없는 집에서 자랐던 나에게 수도관에 절수 테이프를 붙여 뚝딱 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기름 보일러 탱크에 에어를 빼내는 일도, 작은 방 벽에 핀 곰팡이에 락스를 발라 흔적을 지운 후 새 벽지를 펴 바르는 일도, 자전거 수리하는 일도, 나는 스스로 연구하고 미련하게 해 나가던 억척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집안일을 못 본 하는 일은 죄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 이제 설거지 안 해.”

하루는 짜증이 나서 고무장갑을 벗은 후에 싱크대 위에 소리가 나도록 패대기를 친 후 방문을 닫고 들어가 일주일 내내 쌓여가는 설거지를 못 본 척하고 지냈다. 누구 하나 설거지를 대신해 줄 생각은 없어 보였고 결국은 일주일 묵은 설거지를 뒤늦게 하면서 평소보다 몇 배는 농도 짙은 분노를 표출했던 다음 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남편이 다짜고짜 김해에 갈 일이 있다며 차에 타라고 했다. 중고물품을 거래하기로 했다며 밤길을 운전해 도착한 목적지에는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거래할 물건은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 물건이 너무 무거워서 혼자서는 갖고 오기 힘들었다며 같이 옮겨달라 말하는 그를 따라 남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내 허리높이정도 되는 커다란 물건을 낑낑대며 들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건 바로 식기세척기였다.

작은 승용차 뒷좌석에 식기세척기를 눕히듯 쑤셔 넣고, 덜컹거리다 차창이 깨질까 봐 식기세척기에 안전벨트까지 단단히 채웠다. 그래도 불안해 뒷좌석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고 식기세척기를 꼭 보듬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살다 보면 모든 걸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 집착이 나를 갉아먹는지도 모르고 손에 꼭 쥐고 놓지 못했다. 세게 쥐면 쥘수록 손바닥에 상처를 남기는 가시인 줄도 모르고 놓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설거지란 그런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지만, 모른 척 하지도, 남에게 대신해 달라 부탁하지도 못하던 것.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평생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던 설거지를 안 한다고 다짐한 그 순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날은 내가 나를 옭아매다 해방시킨 날이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설거지는 하지 않는다. 그토록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죄책감에 빠지게 했던 설거지는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드는 스트레스 거리가 아니다. 어디 설거지 뿐이겠는가, 싫어도 꾹 참고 모든 것을 손에 쥐고 끙끙 않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법을 익혔더니 내 삶에 의미있는 것들에만 집중하고 진정 마음 끌리는 일에만 에너지를 쓰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세상은 멀쩡히 돌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덜 해도 충분하다. 설거지 통에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어때, 오늘 저녁 식기 세척기가, 내가 설거지한 것보다 더 깨끗하게 설거지를 마무리해 줄 게 분명한데!

이제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하는 대신 차 한 잔을 내리고, 싱크대 앞이 아닌 창가에서 여유를 즐긴다. 고무장갑 빼놓고 머그잔의 온기와 차의 향을 음미하면서 그토록 나를 옭아매던 의무감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홀가분함을 느낀다. 인생의 무게는 설거지 더미가 아니라, 내려놓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의 차 한 잔이 얼마나 달콤하고 향기로운지를 온전히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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