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를 밝히는 한밤중의 우렁각시

by 린꽃

사람이 없는 시골에서 아기와 둘이 지내며 가장 힘든 점은 아무래도 멘탈 관리이다.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도 없으니 잠깐이라도 누군가와 대화할 일도 없고, 오직 울음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아기와 단둘이 남겨져 하루 종일 생활하다 보면 말하는 법도 잊을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가끔 바깥을 쳐다봐도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다.
인근에 편의점이나 슈퍼도 없으니 매일같이 택배를 주문하며 택배아저씨가 오는 시간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택배아저씨의 차가 멀리서부터 빛을 밝히며 다가와 짐을 놓고 가는 모습을 창밖으로 쳐다보는 게 내 하루에 유일하게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이 슬프기도 하다가, 이 생활을 몇 달 더 지속해야 하는데 내가 이곳을 떠나는 내년 봄쯤에는 미치지만 않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남편이 떠나고 며칠이 지나던 어느 이른 아침, 새벽수유를 하던 와중에 코피가 흘러 피가 묻은 아기옷을 손빨래를 하다가 눈물이 나서 아침까지 몇시간을 그대로 울고있었다.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게 너무 무서웠다.
출근하는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받았을 때 서러운 마음이 몰려와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내내 울었다.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너무 무섭다,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몇 번씩 코피도 나고 아기 몸에 태열인지 빨갛게 올라오는데 새로 산 가습기에 물을 채워놔도 자꾸 물이 없다고 뜬다며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냥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나를 달래며 퇴근하고 저녁 늦게라도 오겠다는 남편의 말에는 와봐야 다시 갈 건데 뭐 하러 오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곧장 난장판이 된 집에서 또다시 전쟁 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아기를 겨우 재운 저녁이 오고 나도 잠시 아기 옆에서 쪽잠을 자던 와중에,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에 남편이 들어왔다.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천근만근이라 도저히 일어나지지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남편은 한동안 가습기를 만지며 작동시켜놓고, 어질러놓은 거실의 장난감들을 치우고, 미처 씻지 못한 젖병들과 유축기를 씻었다.
가습기가 되지 않아 거실에 널어놓은 수건들도 정리해놓곤
아기 옷 빨래를 돌려놓고 냉장고에 처음 산 상태 그대로 묵혀지고 있던 사과나 배, 과일들을 꺼내 내가 먹을 수 있게 따로 손질도 해놨다.
뒤늦게 비틀거리며 유축을 하러 나온 내게 왜 과일이며 야채를 죄다 먹지 않았냐며 다 잘라놨으니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했다.
집안일을 다 해놓고 씻고 나온 남편이 아기와 내 옆에 누웠을 때, 사람이 있는 게 믿기지 않아서 등 돌려 누운 남편의 뒤통수를 자꾸 만져봤다. 나와 아기가 아닌 어른인 사람이 집 안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듯했다.



고작해야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난 남편은 또다시 새벽 일찍 출발했다. 떠나면서 주말에 오겠다고, 필요한 게 있으면 문자를 남겨놓으라는 말과 함께 캄캄한 시골길을 운전해 떠났다.
다시 혼자 남겨진 지금은, 집안 가득 익숙한 고요함만이 내려앉았다.
남편이 떠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텅 빈 공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창문 밖으론 새벽안개가 들판 위를 감싸고 있다.



한동안 집안을 둘러보며 남편이 다녀간 흔적들을 돌아봤다.
깨끗하게 정리된 싱크대, 가지런히 놓인 젖병, 그리고 행여나 내가 또 아침을 굶을까봐 식탁 위에 올려진 잘 깎인 사과와 빵들.
그제야 어제의 혼란스러운 하루가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밤새 지쳐 쓰러져 있던 나 대신 말없이 집을 돌보고, 우리를 보살핀 남편 덕분에 똑같은 하루를 시작하며 힘을 내 볼 수 있었다.
남편이 떠난 지금도, 그 손길의 온기가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다.
모처럼 여유롭게 남편이 준비한 아침을 먹으며 문득 웃음이 났다.
아마도 어젯밤엔 우리 집엔 진짜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보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사랑으로 이 집을 지켜준 한밤중의 우렁각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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