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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Jul 25. 2024

도시보다 바쁜 시골일상

시골 새댁으로 살아남기

시골에서 사는 게 마냥 한가한 삶일 거라 생각했던 나는 시골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바쁘다는 걸 깨닫고 한동안 바빴다.

도시에서의 인프라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왕복 두 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 장을 보러 마트를 가야 했고,

프랜차이즈도 없어서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봐서 직접 해 먹었다.

시골에선 배달어플도 무용지물이라 지워버렸다.


배달어플을 켰을 때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 사람 사는 곳도 없고, 자연 외엔 정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이곳에서의 삶이 처음엔 정말 막막했다.


얼마 전엔 내가 아팠다.

처음엔 귀가 좀 불편해서 자꾸 만졌는데 갈수록 더 아파지고 붓고 열도 올랐다. 가만있어도 너무 아파서 참다못해 병원을 가야 했는데 제일 가까운 로컬이비인후과가 네비로 딱 한 시간 거리에 있어서 아픈 와중에 운전을 해서 다녀왔다.

염증 때문에 귀가 부어있다며 많이 아팠을 거라 하시면서 귀치료랑 항생제 일주일치와 귀에 넣는 약을 받아왔다. ​​
남편은 출근과 잦은 당직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 뭐든 나 혼자 해내야 했다.


아파도 혼자였기 때문에 혼자 처음 죽을 만들어먹었다.

근처 죽집이 차로 한시간거리에 위치해있어 선택지가 없었다.

아픈 와중에도 서툴게 참치랑 쌀을 불려 죽을 처음 만들었다.


한 번씩 혼자 있는 낮에 인근 지역의 철원이나 포천의 예쁜 카페들도 다닌다.
이 시골에 이런 예쁜 카페라도 없었더라면 난 살아가지 못했을거다.
이 날 간 철원의 카페는 자연 속에 있어 너무 조용하고 예뻤다.​​



내가 시골에서 느끼는 행복의 순간..
집 근처엔 이런 예쁜 카페가 없기 때문에
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늘 두세 시간의 운전도 감수한다.

시골의 카페들은 대체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테리어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시골의 카페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자연 속에 있다 보면 철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색색의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누가 어떻게 자라라 말하지 않아도 제 색깔로 빛나고 스스로 자라는 법을 안다.

그게 참 기특하다.

자연의 옆에 있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내가 자주 가는 철원의 자등리에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얘는 갈 때마다 보는 엄마고양이다.
임신을 해서 배가 불렀다.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다며 얘를 보면 한참 앉아 쓰다듬고 온다.
처음 만질 땐 화들짝 놀랬는데 이젠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다.​



시골의 곳곳에 있는 ​길고양이들은 대체로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반긴다.

사람이 옆에 있든말든 개의치 않고 본인의 길을 가거나 누워있다.

외로운 이곳에서 고양이들은 내게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평일 한낮에 자등리 한 바퀴를 걸을 때가 요즘 제일 행복하다.
행복할 이유가 생겼다.
초등학생들 하교시간이랑 겹치면 애들이 먼저 달려와 내게 인사를 한다.
처음엔 모르는 애가 인사를 하는 게 낯설어서 내 뒤에 누가 있나 보곤 했는데, 늘 나한테 인사하는 거였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언제부턴가 나도 자등리를 가서 초등학생들을 보면 먼저 인사한다.
귀여운 애들은 늘 배꼽인사로 웃으며 화답한다.



물에 비치는 자연이 얼마나 예쁘던지-
나도 자등리에 살고 싶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시골에 계속 살리라 다짐하게 되는 풍경.



매운 게 먹고 싶은데 프랜차이즈가 없는 곳이라 직접 인터넷에서 레피시를 찾아 떡볶이도 만들고,
왕복 두 시간이 넘는 마트에 가 장을 봐와서 소고기도 구워서 남편이랑 먹었다.
앞으로 샐러드 정기배송을 신청하던지 다른 방법들을 강구해서 도시의 마트 가는 빈도를 줄여야 할 것 같다.
멀기도 너무 멀고 마트 가는 것도 일이라 지친다.
도시와는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버겁긴 하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집 근처를 산책했다.
철마다 예쁜 꽃들이 다르게 피는 우리 동네.
도시의 인프라를 포기하고 자연을 얻었는데,
시골생활에 불평불만이 쌓이려다가도 자연을 보면 활력이 생긴다.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은,
이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까- 가 제일 궁금하다.
이 시골엔 정기적으로 나처럼 글을 올리는 사람도 없고,

내가 이 오지에서 사람과 소통할 방식은 인터넷뿐이다.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났어도 내 또래인 사람도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남편 직장동료들은 대부분 결혼을 안 해서 내겐 이 시골에서 친구가 생길 방법이 없어서 갈수록 외롭다.


도시보다 바쁜 시골생활,

도시보다 더 외로운 이곳에서의 생활을 앞으로도 잘해 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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