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채우는) 집'
잔금을 치르고 우리에게는 실평수 11평의 작고 소중한 공간이 생겼다. 이제 이 공간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야 했다. "3인가족 11평 아파트 입주일기-6"에 썼던 예약 스케줄을 짜는 과정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면 이제 몸이 고생할 차례였다.
첫날은 인터넷 설치, 휴젠뜨 설치, 붙박이 시공이 예약되어 있었다. 다른 건 금방 끝났는데 붙박이가 설치 기사님 혼자서 자재를 하나하나 옮기고 조립하느라 거의 7시간 가까이 걸렸다. 기사님이 안방에서 작업하는 동안 나는 작은 방에서 히터를 켜고 캠핑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인터넷을 빨리 설치한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 남편이 지인에게 빌려온 히터와 친구에게 선물 받은 털신발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감기와 동상에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둘 물건이 설치되는 것을 보며 게임 '심즈'가 생각나 재밌었다. 현실에서는 돈이 훨씬 많이 들고 더 오래 기다려야만 하지만.
둘째 날은 하루종일 입주 청소를 하는 날이어서 아침 일찍 방충망 교체하는 것만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입주 청소 사장님이 한 군데 청소할 때마다 전/후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하자도 몇 개 알려줬다. 에어컨, 싱크대장 밑, 배관 등 청소할 엄두도 나지 않는 곳까지 깨끗하게 만들어준 사장님 덕분에 안심하고 입주할 수 있었다.
셋째 날은 가구가 들어왔다. 업체 네 곳에서 차례로 가구를 배송해 왔는데, 배송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시간을 정할 수는 없고 업체에서 정해준 시간을 통보받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마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한 업체에서는 내가 점심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전화가 와서는 도착하기 10분 전이라고 해서 뜨거운 국수를 후루룩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 소파, 침대, 모션데스크, TV장, 아이 침대, 아일랜드장이 차례로 생겨나는 걸 보며 신이 났지만 가장 오래 시간을 기다린 하루였다. 가구가 다 들어오고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비로소 사람 사는 집처럼 느껴졌다.
넷째 날은 마지막으로 가전이 들어왔다. 남편과 가장 많은 상의 끝에 결정한 품목이었는데 설치된 모습을 보니 마음에 들어서 고민한 보람이 있었다. 특히 주방의 가스레인지와 식기세척기, 수전, 빌트인 정수기가 스테인리스로 통일되어 만족스러웠다. 설치가 끝나고 남편의 숙원이었던 77인치 TV를 틀고 새 가구에 앉아 배달 초밥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런 집이라면 매일 호캉스 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꿀 같았던 식사를 마치고 친정 집으로 돌아가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금요일 저녁이라 차가 많이 막혔던 것이다. 안 그래도 추위와 기다림에 지친 상태에서 꽉 막힌 도로 운전을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이때 나는 최대한 짐을 빨리 옮겨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차를 꽉꽉 채워서라도 두세 번 안에 이사를 끝내버리겠다고. 다음 화에서는 이삿짐센터 없이 생으로 이삿짐을 옮긴 과정에 대해 적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