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가운데를 뚝 잘라 들어선 가을이 이사 간 집의 첫날밤처럼 생경하다.
그래도 그나마 그냥 두면 스치듯 지나가버릴 가을일 줄 알기에 서둘러 옷자락이라도 붙잡아야겠다.
책갈피에 은행 잎 끼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우체국 창가에서 엽서 쓰는 사람들도 사라졌지만,
농부는 가을볕에 내다 말린 깻단을 떨어야 하고,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마음 채비를 해야 하고, 시인은 높아진 하늘에 가을꽃 향기가 깊어지기까지 시상을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