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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May 27. 2024

약을 먹자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무기력증과 우울감, 절망감이 심한 중증도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과수면 증상이 있었고, 피해의식도 높다고 했다. 일주일분 약을 처방받았다. 약의 종류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세로토닌은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행복감을 느끼고 우울감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세로토닌은 분비되어 작용을 한 뒤 재흡수되는데,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말 그대로 이 재흡수를 과정을 억제해 세로토닌이 더 오래 작용하도록 한다. 


의사는 약을 먹는다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고 최소 일주일, 보통 3주는 지나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은 그게 아니다. 매일 한알씩 삼킬 때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약효는 사람마다 달라서 금방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기대했고, 하다못해 플라세보 효과라도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만큼 정상정인 일상이 절실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부작용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 


당연하게도 일주일 만에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러 부작용들이 뒤따랐다. 가장 괴로웠던 건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 계속 깨는 것이었다. 잠결에 의식이 돌아왔다가 금방 다시 잠드는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에 놀란 듯 눈이 확 떠지고는 순간 정신이 명료해지면서 다시 잠에 들기 힘든 상황이 반복됐다. 그렇게 깨고 나면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겨우 다시 잠들거나, 그대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일단 수면 상태가 이러하니 모든 일상에 지장이 있었다. 하루종일 졸린 것은 물론이고, 안 그래도 무기력한 상황에서 몸까지 피곤하니 마치 깊은 호수 바닥에서 수압에 짓눌려 있는 듯 모든 시간과 공간이 너무도 무거웠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 것 마저 큰 결심이 필요했다. 소화기관 쪽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하루 종일 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왔다. 멀미를 할 때처럼 메스껍고 구토감이 들었다. 그러니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약은 꾸준히 먹었다. 부작용은 나아지기도 한다고 들었고, 약효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약을 바꾸고 심장이 떨렸다.
차라리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여전히 부작용은 심했고, 기분 상태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욱더 무기력해지고 좌절감이 들었다. 이제는 확실히 우울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증상들을 이야기하자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환자가 일주일 만에 더 심해져서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약을 바꿔보자고 했다. 새로 처방받은 약은 역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중 다른 성분의 약이었다. 기존 약보다 대체적으로 효과는 떨어지지만 부작용은 적다고 했다. 그러나 별다른 기대감이나 희망은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게 계속해서 더 나빠질 거란 생각만 들었다. 그것이 약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인생과 주변 모든 게 무너져 간다고 생각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약을 바꿨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고 부작용들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다른  부작용까지 추가됐다. 시도 때도 없이 심장 주변의 가슴 근육이 약하게 떨리면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하품을 할 때면 가슴이 죄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며 떨림이 심해졌다. 마치 오한이 들 때처럼. 심장 근처라 그런지 왠지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무섭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러다 심장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울증은 더 심해져만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의 성분명까지 썼으나 부작용 이야기 때문에 오해를 일으킬까 하여 제외했다. 우울증 약은 종류가 매우 많다. 약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다. 누군가에겐 훌륭한 약이 누군가에겐 부작용만 안겨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떤 약을 먹고 좋아졌다거나 나빠졌다는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우울증이라고 다 똑같은 병이 아니다. 환자마다 증상과 필요한 약물이 다르고, 개인차에 따라 어떤 성분이 잘 맞고 안 맞는지도 다르다. 내게 맞는 약을 주치의와 함께 찾아 나가는 게 우울증 치료의 시작이다. 


아울러, 혹여나 이 글을 보고 우울증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우울증 치료가 감기처럼 약 먹고 쉬면 낫는 쉬운 병이 아니며, 치료를 위해 인내해야 할 시간이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쓴 글이다. '우울증 약은 부작용이 심하고 나쁘니 먹지 마라'가 아니라 '우울증 치료 초기가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맞는 약을 찾을 때까지 참고 견뎌야 본격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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