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몇몇 친구는 공감을 받기만 하지 생전 나의 피드에 답방을 안 온다. (뭐 물론 온라인에서 만난 인연이라면 그럴 일조차 없겠지만..)
그들은 쌍방향 피드가 아닌 일기장처럼 SNS를 사용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그 친구 계정은 자연스레 그냥 넘기게 된다. 주로 육아 내용인 피드를 보고 있자면 어느 숙박 광고가 생각난다. ‘드디어 아이 없이 떠난 여행 호텔에서 더 많은 아이들과 지낼 필요 있을까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뭐 하러 관심을 두겠어? 감정 낭비, 시간낭비지... 일 년에 한두 번은 볼일이 있으니 팔로워를 끊지도 못하겠고. 그 친구 계정이 보일 때마다 작아지는 내 마음 어딘가가 불편하다. 상대는 이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내가 뭔가를 받으려고만 하는 속물처럼 느껴져 기분이 찜찜하다.
공감은 받을 수 있어야지, 주고 싶어지는 걸까?
긴 기간 그런 의문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피드를 발견했다.
작은 나를 잊으려고 SNS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 예방에 최고 특효라는 '감사 일기'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나 홀로 우울증 극복 프로젝트로, 감사한 일을 SNS에 한 줄의 감사메모로 쓰는 중이었다.
인스타그램 포스팅 하단 태그에 감사 내용을 소심하게 올리면서 온라인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와 적당한 방법으로 감사를 공유하고, 공감받고 싶어 찾아 나섰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전달된 건지 아니면 감사의 힘인지,
내가 올린 감사 태그는 파도를 타고, 다른 감사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가닿았다. 또 다른 감사를 공유하는 사용자들과 연결되니, 하루에도 몇 배의 감사가 되돌아왔다. 감사 일기는 하루에 세 줄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데, 나는 매일 실천이라 괜찮다며 은근슬쩍 한 줄만 쓰던 참이었다. 그런데 키워드를 타고 들어간 계정에서, 감사 에너지가 세 줄 아니 다섯 줄이 되어 나에게 돌아와 가슴에 가득 찼다. 그들의 피드에서 자신과 타인에게, '인생의 만병통치약이라는 감사를'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공감을 주러 방문했다가 몇 배로 받아온 이 경험을 통해, SNS에서처음으로 조건 없는 포근함을 느꼈다. 공감은 주는 행위를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아주 작은 주고자 하는 마음 한 자락을 끼워 넣은 SNS발신은,
버스를 탈 때 먼저 건네는 인사와 같이, 더 큰 공감으로 내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