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음표 May 21. 2024

어떻게든 계속 저항하겠다는 약속

나는 어떤 공간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아본 적 없는 몸이다. 차별과 혐오와 학대가 내 삶의 기본값이었다. 끔찍한 말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자폐인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폭력적인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 때 혼자 24시간 365일 현실적인 불이익을 받아내며 싸울 수는 없다.


대신 나 자신과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겠다.


폭력적인 상황에 적응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체념하는 대신 내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겠다. 살아남기 위해 타협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항하겠다. 뛸 수 없으면 걸을 것이고 걸을 수 없으면 기어갈 것이다. 만약 굴욕적인 방식으로 타협해야 할 일이 또 생긴다면 살아남기 위해 한 말과 행동을 가지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겠다. 반면 타협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다가 끔찍한 결과가 나와도 도전해볼 만 한 일이라면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내겠다. 대신 무엇이 나를 실패하게 만들었는지 공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기적으로 돌아볼 것이다.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을 본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 내가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폭력이 내 삶의 기본값이 아니어도 되는 환경을 상상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고 도전하고 듣고 쓰고 말할 것이다.


20살 때 시작한 고민이 이렇게 처음 글로 나온다. 아직까지는 ‘최선을 다하겠다’ 같은 추상적인 내용이 많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배우고 경험할 내용으로 지금 쓰지 못한 부분들을 채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