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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표 Sep 29. 2024

장애지원이라 쓰고 사기라 읽는다

대학에서 받았던 장애학생 지원

내가 다닌 대학교에는 전교생이 학교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알러지 때문에 정상적으로 학교 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 학식에 들어가는 조미료에 몸이 거부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교에서는 학식 비용을 강제로 걷어갔다. 먹을 수 없는 학식에 돈을 낼 수 없으니 학식비를 그만 내게 해달라고 항의하자 학교에서는 "알러지로 장애지원을 신청하면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생각했지만 학식비를 계속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결국 장애지원 신청 절차를 밟았다. 간신히 지원을 승인받았지만, 장애지원을 받아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학교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기만 했다.


미국 대학교에서 학생이 장애지원을 신청하면 장애학생 지원센터 담당자와 면담을 거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협의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운영하는 장애학생 지원센터는 장애학생을 돕기는커녕 있는 지원도 해주지 않으려고 핑계를 대기 바빴다. 담당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해결책을 들이밀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지원이 필요하냐"고 따지면 그게 왜 불가능한지 설명하려고 논리를 짜내야 했다. 


학교에서 겨울방학 동안 학식 프로그램에 등록하라고 강요해서 알러지 때문에 빠지고 싶다고 항의했더니 담당자가 "네가 학식비를 내면 학교에서 3주치 식재료를 사줄 테니 학생 식당 앞에 와서 받아간 다음 기숙사로 실어가서 얼려놓으라"고 우기는 식이었다. 참고로 이 학교는 나 말고 다른 학생에게도 장애학생 지원을 거부해서 고소당한 적 있다 (미국에서 이렇게 하면 장애인법 위반으로 민사소송을 당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학생식당에서 알러지를 유발하는 재료 없이 요리한 음식을 제공받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약속한 음식을 받으러 가면 학생식당 운영자(?)가 "못 해준다"며 막아서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알러지가 있는 학생들의 얼굴을 포스터로 만들어서 학생식당 직원들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직원 분들께 여쭤봤을 때는 내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는 본 적도 없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기본적인 지원사항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하고 있을 때는 부당한 일을 당한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워서 계속 끌려다녔다. 내가 너무 예민하거나 상황을 꼬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하지만 장애학생에게 훌륭한 지원을 해준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막상 지원이 필요할 때는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은 전적대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지원 사항을 문서로 만들어달라고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요청했더니 "개인화된 지원을 제공하려면 면담이 꼭 필요하다"는 핑계로 내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문서로 남기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텼다. 학교에서 내가 받을 지원사항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문제제기할 근거가 없다. 본인들이 하는 일을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었다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반응이다. 


학생 식당 담당자가 면담 중에 나를 함부로 대해서 면담을 피하고 싶다고 설명해도 장애학생 지원 담당자는 “면담이 필요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학교에서 아무것도 문서로 남기지 않으니 담당자가 말을 계속 바꿔도 항의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장애학생 지원센터에게 크게 데여서 장애학생 지원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정말 장애학생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일이 터졌을 때도 센터를 거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다가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협당하는 수준까지 갔다. 


미국 대학교에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어도 결국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충분히 받을 수 있었던 장애지원도 인종차별적인 이유로 받지 못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백인 학생들도 장애지원에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담당자들이 기본적인 예의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나에게 대학은 어렵게 얻은 기회였고 평생 시달렸던 폭력에서 벗어날 희망이었다. 그런데 인종차별과 장애인 차별이 내 희망을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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