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교 가는 길 1

# 입학식

by gir

아이는 이제 7살이다. 마른 체형의 키가 작은 허름한 옷을 입은 할머니께서 아이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탄다. 아침 출근시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아이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학교로 향한다.

생일이 2월인 아이는 7살에 학교를 가게 되었다. 집 앞 국민학교를 가면 좋으련만 친가 주소로 되어있는 아이는 지하철로 3 정거장이 되는 곳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차비는 200원 오고 가고 400원이 든다.

400원이면 5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8개나 사 먹을 수 있는 아이에게는 큰돈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아이 손을 잡고 혼잣말을 하신다. " 아니 학교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그 돈은

얼마야... 차라리 나나 주지...ㅉㅉㅉ" 그런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아이는 할머니의 푸념 어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이는 작은 방을 벗어나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뾰족구두에 정장을 잘 차려입은 한 여자가 아이 앞에 섰다. 아이가 처음 맡아보는 진한 샴푸향 같은 것이 났다. 콩나물시루처럼 열차 안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하니 열차 안에 기둥이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아까 같이 줄을 섰던 뾰족 구두 여자가 커다란 엉덩이로 아이 머리를 자꾸만 밀어붙였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할머니 쪽으로 몸을 돌려 얼굴을 파묻었다. " 이번 역은 무악제 무악제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안내문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출입문이 열였다. 아이가 내리는 무악제역은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할머니는 작고 여린 아이의 손을 잡아 끓며 열차에서 내렸다.

긴 계단을 올라서 손에 꼭 쥐고 있던 패스권을 아이 키만 한 기계에 넣고 커다란 쇠기둥을 밀어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끔 엄마와 할아버지 집에 갈 때 지하철을 몇 번 타 보았기 때문에 아이는 할머니 앞에서 보란 듯이 개찰구에패스를 넣고 나왔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 손을 다시금 꼭 잡고 계단을 오른다. 할머니는 다시 혼잣말을 한다. " 이놈의 계단을 끝이 없네.... 버스 타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꼭 지하철을 타야 하나...." 사실 어린아이에게 만원 버스보다 차라리 흔들림이 덜한 지하철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아이 엄마의 부탁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을 올라 지하철을 빠져나와보니 아침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또래 다른 아이들이 하나같이 엄마 손을 잡고 자신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교로 걸어간다.

아이도 새로 산 만화에서 나오는 캔디가 그려진 빨간 가방에 반짝이는 구두 코르덴으로 된 초록색 원피스를 입었다. 아직 3월이라 춥지만 한컷 멋을 부린 아이는 학교로 올라가는 길 가슴이 벅차올랐다. 학생이 되어 학교를 가는 것도 좋았지만 늘 좁은 방에만 있던 아이는 동화책에서 나오는 라푼젤이 되는 기분이었다. 비록 엄마 손을 잡고 올라가지 않지만 경쾌한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은 학교 가는 길은 아이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학교는 정문에서 꼬불고 불한 오르막 길을 또다시 올라야 했다. 한쪽으로 인도로 정해진 좁은 흰 시멘트 길이 있고 옆으로는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차가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정문 앞에는 키가 커다란 5~6학년으로 되어 보니는 언니 오빠들이 서있었다. 명찰을 안 달고 있는 아이들에게 명찰을 달라고 이야기하거나 인도 밖으로 아이들이 걷지 못하게 안내를 했다.

아이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 정문까지 걸 오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힘든 기색 없다. 정문에서 학교까지 올라가면 커다란 운동장이 나오고 운동장 앞 교단에 태극기가 달려있었다. 학생들은 저 다마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모두 운동장 앞에 서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는 뭐라고 중얼중얼거리더니 지나간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아이들은 없다. 긴 갈색 나무 몽둥이를 든 꽉 마름 남자 선생님이 그 앞을 지켜서 있었다. 나중에 아이는 그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6년 동안 매일 아침 운동장 앞에 서서 국기의 대한 맹세를 했다. " 나는 자장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이 한 몸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사실 아이는 이 맹세를 이해하건 아니었지만 책에 나오는 유관순열사가 되기라도 한 듯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맹세를 하곤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국민학교를 다니는 6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매일 맹세를 했다.

아이는 1학년 6반이었다. 우선 운동장을 가로질러 1-6이라고 크게 쓰여있는 교실 쪽으로 향 했다. 머리를 뽀글뽀글 파마한 어울지 않는 파란 정장을 입은 한 여자가 교실로 들어온다.

그리곤 교실 안까지 들어와 있던 엄마들은 복도로 우르르 나갔다. 그 여자는 담임선생님 이신 듯했다.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아이들에게 앞으로 학교에서 지낼 중요한 사항들을 설명하셨다.

그러나 아이는 그때부터였을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창가 쪽 중간 즈음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 건물 뒤편 작은 소운동장에 보이는 정글집, 그네, 시소가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에 그날따라 눈이 부시게 내리 쐬는 햇살은 소운동장을 비추고 있었다. 이후 강당에서 입학식이 있었고 아이는 강단에서 몇몇 머리를 꼬불거리게 파마를 한 선생님들의 율동을 따라 하며 동요를 부르고 회색 정장을 입은 교장선생님의 축사를 들었다.

아이는 자기 옆에 앉아 있는 키가 크고 마른 한 남자아이가 옆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소리에 온통 그 남자아에게 신경이 쓰여 입학식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이후 학교에서 나눠주는 교과서를 가득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아침 시간이랑 사믓 다른 분위기였다. 정문 앞에는 아침에 볼 수 없던 달고나를 파는 아저씨가 설탕을 녹이고 여러 가지 무늬틀로 연신 뽑기를 만들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이 침을 발라가며 뽑기는 하고 그 옆에는 엿장수, 솜사탕 장수, 병아리장수들이 아이들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아이는 몇 번 할머니 옷자락을 끌며 애원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더 세게 잡어 끓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 방향으로 걸었다.

아이는 그런 할머니의 벌음을 맞춰 걸어야 했기에 종종걸음으로 달리듯 걸었다. " 할머니 구경만 하고 가도 안 되는 거야?" 할머니는 말이 없이 그저 아이의 손을 더 꽉 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입학식은 꿈속에서 라푼젤이 되어 동화책과 마론인형이 전부인 작은 방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지나갔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