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지하철에 들어선 아이는 약국집 딸내미와 매표소 앞에 섰다.
" 어린이표 2장이요" 매표소 안쪽 역무원은 힐끔 아이를 보더니 초록색 패스권 두장을
밀어주었다.
아이는 약국집 딸내미에게 표한 장을 주고는 개찰구 앞에서 표를 넣고 쇠기둥을 돌리며 개찰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머뭇머뭇 개찰구 앞에선 약국집 딸내미는 금방이라도 쏫아낼것 같은 눈동자에 눈물을 찰랑거리며 아이를 바라본다.
" 나는 못 가겠어...." 평소 겁이 많고 소심한 약국집 딸내미는 그렇게 머뭇거리며 서있더니 뒤돌아 최대한 큰 보폭으로 개찰구에서 멀어져 돌아 나간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개찰구가 있는 곳에서 계단을 더 내려가 열차를 기다리는 안전선 밖 신문과 음료 껌등을 파는 작은 매점옆에 노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열차를 기다였다.
노란 안전선 밖으로 몇몇 사람들이 서 있다.
" 곧 양제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승객 여러분 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고 아이가 일어나 노란 안전선 앞으로 걸어가 섰다.
열차문이 열리고 아이는 열차에 올랐다. 열차 안에는 역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최대한 출입문 가까운 쪽으로 앉고 싶었으나... 아이는 열차 안 긴 의자 중앙에 앉게 되었다.
아이 앞쪽 앉은 아주머니는 눈을 감고 주무시는 듯했고 그 옆으로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그 아주머니 옆에서 연신 눈동자 굴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인지 슬프지만 어딘가 요란하기도 한 연주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고개를 돌리니 열차 연결 문쪽에서 한 아저씨가 눈을 감고 하모니카를 불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흰색 긴 막대기와 작은 바구니를 양옆으로 흔들거렸다. 몇몇 사람들이 주머니에 동전을 이리저리 흔들 거리는 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아이가 주머니에 있는 어린이 패스권 두장을 사고 남은 950원을 만지작 거리며 그 아저씨를 보며 서있었다.
아저씨가 아이 앞쪽으로 걸어올 때쯤 열차는 무악제 역에 도착했다. 머뭇거리던 아이가 열차 문이 열리자 주머니에 동전을 그 바구니에 넣고는 열차를 내렸다.
그렇게 아이는 무악제 역에 내렸다. 긴 계단을 올라 지하철을 빠져 학교로 향했다.
등교할 때는 문이 닫혀 있던 여러 상점은 문이 열여 있었다.
학교 가는 길은 아이가 등교할 때와 다르게 한적 했다. 몇몇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 있는 오락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연신 손가락이 보이지 않게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그 옆에 오락기 안으로 들어 갈듯이 고개를 쭉 잡아 빼고 있다. 활짝 열린 미용실 안쪽으로는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복덕방에는 할아버지 몇 분이 텔레비전으로 송출되는 올림픽 경기를 보며 담배를 피우며 꾀나 심각해 보였다.
아이의 걸음이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정문에 다 달았을 때 커다란 철로 된 정문은 닫아 있고 옆쪽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철문이 열려 있었다. 작은 철문을 지나 학교에 들어선 아이는 등교할 때처럼 가슴에 손을
올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다.
아이는 강당에 오르는 계단에 앉아 봄바람에 한숨 돌리며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강당건물 옆쪽 소운동장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정글집 철봉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사육장옆 후문으로 몇몇 아이들이 더 학교로 들어온다.
모래사장 뒤쪽에 나무 벤치의자에 아이는 앉았다.
그때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왔다. " 너 1학년 6반이지?" 회색 고무줄 바지에 하늘색 티셔츠 누빔이 되어있는
조끼를 입은 그 여자아이는 얼굴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아이에게 다가왔다. "응"
아이가 대답 하자 아이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입술을 씰룩거리며 "나도 같은 반이야... 난 박시영이야!! 우리 같이 놀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둘은 그렇게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가지고 작은 손으로 성을 짓고 웅덩이 길을 만들며 놀았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주희엄마예요.... 잠시 친정집에 다녀왔는데 집에 애들이 없어서요..."
"우리 아이는 일찍 집에 들어왔어요... 주희는 학교에 간다고 했다고 하네요...." 약국집 딸내미 엄마는 걱정 어린 얼굴로 아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이 엄마는 집으로 잘려와 학교로 전화를 한다. " 안녕하세요 저는 1학년 6반 정주희 엄마예요. 아이가 학교를 갔다고 하는데 혹시 아직 학교에 있는지 확인이 가능할까요..." 수화기 너머 당직 교사의 목소리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 소운동장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확인하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당직 선생님은 극성맞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아이 엄마 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수화기 앞에 무릎을 꿇고 벌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찰랑거리는 눈물을 가득 담고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 전화를 기다렸다.
한참 잔화벨이 울리고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 주희 어머니시죠? 주희가 학교에 있네요. 집이 불광동 이세요? 아니 그 먼 데서 혼자 학교까지 왔네요.
빨리 집에 가도록 귀가조치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당직 선생님의 목소리는 극성맞은 엄마라고 생각 했던 게 미안했는지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긴장이 풀린 듯 엄마는 주저앉아 이네 찰랑거리던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대충 카디건을 걸치고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려 하늘은 뻘겋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