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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l 12. 2024

#2, 주렴을 걸어두다

여름을 신선처럼 보낸다

   

여름이라 햇빛이 깊숙이 들어와 볕이 따갑다.

대발을 걸어두어 빛을 은근히 들어 오 개 하니

바람이 차가운 대발에 걸려 청량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오수를 청하기 참 좋다.


대자리 깔고 베개를 베고 삼베 홑이불을 덮으니 

왠지 신선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내가 옛 선비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여자 선비가 있었다면,

혼자 미소 지으며 무릎을 세워 한 다리를 들어 다른 쪽에 올리니

참 편하다


누워 책을 들고 소리 내어 읽으니 내 책 읽는 소리 낭랑하여

내가 듣기에도 좋아 스스로 만족하였다.


두어 페이지 넘어가니 팔이 아파 안 되겠다 싶어

엎드려서 읽으니 영 불편하다.


그래도 참고 몇 쪽을 더 읽었다 

시원하니 눈이 스르르 내려온다.


이래서야 어디 옛 선비 흉내를 내어 보겠나

신선놀음도 몸이 좋아야 한다.


들고 있던 책을 내려 얼굴에 얹어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깐 사이 편히 눈을 감고 잠들었다 싶은데

불청객이 날아들었다.


모기란 놈이 들어와서 내 팔과 다리에 앉았다

피부가 매끄러워 남편까지 홀렸는데,

모기 이놈이 앉아 내 귀한 피를 빨대 꼽고 빤다.


책을 조용히 내려 탁 치니 한 놈이 피를 낭자하게 쏟아 놓고 죽었다

한 놈은 내 움직임을 감지하고 날아가 버린다.

올려다보니 이놈이 피를 얼마나 흡혈하였는지 뒤 꽁지가 무거워 

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잠이 확 달아난다. 

급히 응급처방으로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발라 두고 

물파스를 찾았다. 파스를 바르고 난 뒤에 생각했다.

비상책을 써야겠다.


작년에 쓰고 넣어 둔 주렴이 생각이 나서 창고를 살폈다.

창고 안에 박스에 주렴이 있었다.

물을 뿌리며 살살 닦으니 올해도 쓸만하였다

햇빛에 들어 보니 영롱하다


내 주렴은 각지고 투명한 유리구슬이다.

움직이니 빛이 반짝이며 퍼지는 것이 아름답다.


옳거니 이것을 가져다 대발 앞에 문에 걸자고 하며

기분 좋게 가져와서 의자를 놓고 위에 올라가서 걸었다

조심스럽게 내려와 의자는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대자리 위에 앉아 바라보니 너무 아름답다.


한여름의 더운 열기를 가지고 온 바람이 마당의 나무에 걸려 

뜨거움을 내려놓고, 


다시 대나무발에 걸려 차가운 바람으로 변하고

주렴에 걸려 차르랑거리며 주렴끼리 부딪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주렴에 부딪힌 은은한 빛이 주름의 각에 걸려 반짝반짝 빛이 나며

바람에 흩어져 보석처럼 별처럼 마루에서 빛난다.


이제 만족하여 모기 놈이 멍청한 사시가 아닌 담에야

찾아들지 못할 것이다.


설사 대발을 통과해도 주렴 때문에 눈이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이제 편히 누워보자고 누웠는데


불청객이 한 녀석이 더 있다.

마루 한쪽 그늘진 곳에 누워 있던 고양이 녀석이 

주렴이 뿌린 보석을 잡는다고 마루에서 탐색전이 벌어졌다


아이고 안 되겠구나 하고

일어나 탁자를 가지고 와 앉아 책을 읽었다

조용히 쉼을 청할 권리를 장난스러운 고양이 때문에 놓쳤다

편히 지낼 수도 없구나.

#오수 #주렴발 #불청객 #유리구슬 #예스러운 #대발 #모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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